[카드뉴스] 남매끼리 결혼? ‘달의 연인’ 속 고려의 요상한 ‘性’

박민지 기자
입력일 2016-09-26 07:00 수정일 2016-09-26 07:00 발행일 1970-01-01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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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인 여자, 고지식한 남자

충렬왕 시절 관직에 있던 허공은 거문고를 타다 봉변(?)을 당했다. 옆집 여인이 담장을 타고 넘어온 것. 허공은 그녀를 타일러 돌려보냈다. 학자 김태현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 지인의 집에서 학문을 닦고 있었는데 과부인 딸이 구애해 다시는 방문하지 않았다.

혈통을 위해 혼인한 남매

왕건의 넷째 아들이자 훗날 고려 4대왕 광종이 된 왕소와 왕건의 셋째 딸 황보는 엄마는 다르지만 아빠는 같은 이복남매다. 광종의 둘째부인은 조카다. 하지만 왕족 순혈주의로 중앙집권 지배체제와 왕권안정을 위해 그 둘은 부부가 되었다. 근친혼은 왕실 뿐 아니라 고려사회 전반을 지배했다고 전해진다.

배우자가 없어도 간통?

당시 간통은 남녀 모두 실형이 선고되었는데, 특이한 점은 배우자가 없어도 간통으로 처벌받았다는 점이다. 홀아비인 김혼 장군은 과부인 김문비 장군의 처와 사랑에 빠졌지만 유배당했다. 배우자 유무와 상관없이 혼인 외 관계를 의미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민왕과 미소년

고려 공민왕은 미소년이 궁에 출입할 수 있도록 자제위라는 기구를 만들고 궁에 들어온 미소년과 동성애를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들을 임금침실까지 불러 집단으로 간음했다는 설도 있다.

자유분방한 이혼과 재혼

생각보다(?) 자유분방했던 고려시대 남녀관계로 인해 무분별한 재혼이 이어지자 고려 말 공양왕 때, 재혼규정이 만들어졌다. 그것도 정3품 이상 관리 부인으로 봉작을 받은 여성에 한해서만 적용되어 자유로운 결혼과 이혼은 계속되었다. 심지어 이혼녀와 결혼한 임금도 있다.

충렬왕과 미녀들

충렬왕은 쾌락을 위해 전국 각지의 미녀를 선발했다. 뽑힌 미녀들은 노래와 춤을 연마해 하나의 그룹이 되어 임금의 기쁨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임금은 이들을 기생으로 삼아 임금 전용 극장에서 수시로 풍류를 즐겼다.

대중적인 남녀혼탕

오늘날과 달리 남녀혼탕은 고려시대에서 꽤나 대중적이었다. 고려도경에 따르면 물가에서 남녀 구별 없이 옷을 벗고 물놀이 하듯 목욕하였다고 기록되어있다.

쌍화점 그리고 자유

영화 제목으로도 유명한 쌍화점은 한 여성이 승려, 술집아비, 서역인 등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내용을 가사로 하는 가요다. 당시 퇴폐적인 성윤리가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고려의 자유분방한 성생활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박민지 기자 pmj@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