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한국경제는 지금 무엇으로 사는가

방형국 기자
입력일 2016-08-31 06:11 수정일 2016-08-31 06:11 발행일 2016-08-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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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 -편집용 사진
방형국 사회부동산 부장

한국경제는 지금 무엇으로 사는가. 기업가 정신도, 근로자의 땀과 열정도, 정부의 비전도 아니다.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것, 한국경제를 이끌고 있는 것은 부동산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건설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분석하면 자명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5년 같은 기간 대비 지난 1, 2분기 경제성장률은 각각 2.8%와 3.2%이지만 건설투자를 제외하면 1.9%로 내려앉는다.

건설투자의 질(質)이 좋은 것도 아니다. 한은의 ‘2016년 하반기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상반기 건설투자는 작년 동기에 비해 10.1% 급증했다. 문제는 하반기다. 보고서는 하반기 건설투자 증가율이 3.9%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주거용 건물을 중심으로 높은 증가세가 이어져 왔으나 주택 초과공급 확대로 하반기 이후 증가세가 둔화될 소지가 있다”는 게 이유다. 건설투자가 아파트 건설에 집중된 것이지, 국가 백년지대계의 기반이 되는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투자가 아니다.

개발연대 때에는 경제규모에서 건설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었다. 1973년 1차 오일쇼크로 부도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을 구해낸 것도 건설이었다. 당시 현대건설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9억 달러 규모의 주베일 항만 건설 공사를 수주, 기성금을 담보로 정부는 해외차관을 변통할 수 있었다. IMF 위기에 직면한 나라를 구한 것이 바로 건설이었다. 9억 달러면 당시 우리나라 1년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거액이다.

세월은 흘렀고, 한국경제의 체질도 바뀌었다. 반도체에서 자동차, 조선, 화학, ICT 등의 첨단산업 비중이 커지고, 한국경제의 견인차로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다. 한류(韓流)를 타고 문화수출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경제규모에서 건설산업의 비중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대한건설협회의 ‘역대 정부와 건설·경제지표 분석 결과’에 따르면 노태우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까지 25년간 경제규모는 2.8배 성장(약 371조원→1038조원)한 반면 건설수주액은 1.7배 성장(약 50조원→87조원)하는 데 그쳤다. 건설산업이 부진한 게 아니라 반도체 자동차 조선 화학 ICT 등으로 산업의 큰 줄기가 바뀐 것을 의미한다. 산업구조 포트폴리오가 독일 일본과 겨룰 만큼 선진화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아파트 등 부동산 위주 경제운용으로 건설투자가 다시 늘어났고, 그 결과 한국경제는 작년과 올해 부동산으로 연명하고 있다. 그 증거가 정부가 엊그제 내놓은 8·25 대책이다. 이 대책에서 정부는 그 무능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가계부채를 줄이겠다면서 집값에 거품을 조장하는 본말이 전도된 대책이다. 아파트 분양시장과 기존주택 시장이 과열되고, 집단대출이 폭증하면 한국경제가 갈 길은 뻔하다. ‘소비절벽’이다. 내수를 살려도 시원치 않은 판에, 정부가 되레 내수를 죽이고 있다. 부채가 늘어나면 가계는 소비를 줄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2분기 가계동향’(통계청)에 따르면 2분기 평균소비성향은 70.9%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7%포인트 하락했다. 통계청이 관련 통계를 발표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돈을 모을 수도, 그래서 쓰기가 겁나는 구조적 상황에서 집 사느라 빚진 사람들이 무슨 수로 돈을 쓸까? 8·25 대책에서 정부는 근본적인 고민을 하지 않았고, 그 끝을 보지 못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뒤늦게 “분양시장 과열이 지속되는 상황에 대비해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대비 태세를 갖추겠다”고 밝혔다. 8·25 대책으로 부동산시장이 더 끓어오르는 조짐을 보이자 시장에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임 위원장이 다른 부처와 교감을 갖고 시그널을 보낸 것인지 모르지만 ‘대책에 또 대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무능한 정부다.

‘잃어버린 20년’ 동안 부동산 가격이 추락했던 일본 사례를 한국이 따를 것이냐, 아니냐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지금 한국의 부동산 시장이 불안하다는 반증이다. 주목할 것은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에 힘입어 마이너스 금리 상황에서 일본경제가 회생의 기미를 보임에도 부동산 값은 움직임이 없다는 점이다. 또 하나. 홍콩과 싱가포르의 집값이 최근 하락 반전한 점이다. 홍콩에선 지난 6월말 기준 평균주택 가격이 고점이었던 작년 9월에 비해 13% 하락했다. 싱가포르 집값은 직전 고점이었던 2013년 9월보다 9% 떨어졌다. 주택 거래량도 반 토막이다. 전망은 더 안 좋다. 홍콩 주택 가격은 2018년까지 20% 더 떨어지고, 싱가포르 집값은 올해도 3~6% 하락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중국경제가 침체한 탓이다. 이게 시그널이다.

방형국 사회부동산 부장 bhk@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