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비 대신 내라"… 재건축조합 '갑질'에 영세 협력사 눈물

박선옥 기자
입력일 2016-03-21 16:05 수정일 2016-03-21 18:56 발행일 2016-03-2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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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A아파트 재건축 설계를 맡고 있는 B건축사무소의 담당자는 조합 대의원과 마주칠 때마다 난감하다. 캠핑용품이 필요하다고 벌써 몇 번이나 얘기를 하는데, 사달라고 눈치를 주는 것 같아 불편한 것이다. A아파트의 또 다른 협력사인 C업체는 지난 수요일 조합 회의가 없었음에도 조합사무실에 찾아가 회의가 끝날 때까지 대기해야 했다. 조합장이 회의 후 있을 회식의 비용을 결제하고 가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C업체는 그 날 먹지도 않은 고기 값으로 200여만원을 내야 했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2~3년 전부터 재건축·재개발 등의 정비사업이 속도를 내면서 협력사에 이른바 ‘갑질’하는 조합이 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재건축·재개발 사업하면 시공사(건설사) 선정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안전진단부터 측량, 설계, 철거, 폐석면운반처리, 컨설팅, 감정평가 등 수십여 곳의 협력사와 함께 일을 한다.

시공사도 정비사업 수주를 위해 공을 들이지만 상대적으로 경쟁업체가 많지 않고, 조합원들이 선호하는 브랜드가 뚜렷하면 의외로 쉽게 선정되기도 한다.

반면 시공사 외 협력사들은 경쟁이 치열하고, 건설사처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곳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건설사에 비해 자금력이 약하다 보니, 조합에서 이들을 상대로 갑질하는 사례가 빈번한 것이다.

한 건축사무소 관계자는 “건설사를 제외한 협력사들은 규모가 작다보니 용역비를 제때 받는 게 중요한데, 조합 측에서 자신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미루곤 한다”며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응하는 게 이익”이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협력사 관계자는 “을이라고 다 같은 을이 아니다”며 “을 중에서도 건설사나 건축사무소처럼 발주가 이뤄지는 곳은 그나마 사정이 낫고, 결국 마지막에 일을 맡는 가장 작은 업체가 조합과 을 중에서도 우위에 있는 업체의 회식비를 떠안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나마 회식비 정도는 업계 관행으로 여겨진다. 서울 강남권의 D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상가 설계에 반영하겠다며 다른 지역 상가 투어에 나서는 비용을 건축사무소에 요구했다. 이 건축사무소 측 관계자는 “말로는 본인들의 아파트 상가에 적용할 상가를 보기 위한 투어라지만 어차피 설계는 우리가 하는 것 아니냐”며 “버스 대절비와 회식비를 요구했는데, 결국은 조합 봄나들이었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기준에 따라 협력사를 선정한다고는 해도 조합에서 ‘이 업체는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소문을 퍼뜨리면 업계에서 좋을 게 없다”며 “협력사야 용역비에 조합 회식비까지 포함시키면 그만이지만 결국 이는 조합원들의 피해로 연결되는 것 아니겠냐”고 설명했다.

박선옥 기자 pso9820@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