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패 속에서 '진화'한 이세돌, 혹은 알파고의 버그(?)

이승제 기자
입력일 2016-03-13 18:04 수정일 2016-03-13 19:08 발행일 2016-03-14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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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초반 두터운 실리 전략 후 중앙에서 전투력 폭발
알파고, 연이어 어처구니없는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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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이 1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4국에서 180수 만에 알파고에 불계승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활짝 웃고 있다. (연합)

인간 전략의 승리인가, AI(인공지능)의 한계인가.

13일 벌어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제4국은 이전 대국에 비해 한층 흥미롭게 펼쳐졌다.

하지만 ‘알파고’의 오류, 또는 ‘버그’가 승리의 향방을 갈랐다.

이세돌 9단은 작심한 듯 담담하게 실리를 지향했다. 좌상귀에서 10집 이상, 좌변에 다섯집 가량을 확정지었다. ‘나의 근거지를 확고히 하고 상대의 안정을 교란시킨다’는 전략으로 비춰졌다.

대국은 초반 호각지세(互角之勢)를 지나 중앙의 치열한 수싸움으로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3국까지 완벽한 판세 읽기와 촘촘한 수읽기 능력을 보이던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의 대응에 혼란을 느낀 것일까. 중앙의 기세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던 것일까. 실리로 일관하던 이세돌 9단은 중앙의 두터운 흑집을 삭감하면서 본연의 ‘센돌’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참았던 전투력을 분출하듯 과감하게 흑돌을 끊고 알파고에게 선택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알파고는 갑자기 연이어 어처구니없는 두 수를 뒀다. 좌하귀에서 백 두 점 사이에 흑을 끼워넣더니, 우변에 이유없이 1선으로 돌을 늘었다. 해설자들은 “18급이나 둘 수”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세돌은 침착하게 알파고의 실수를 응징해 나갔다. 중앙의 흑집을 깔끔하게 삭감했고 좌변의 흑집을 압박하며 초읽기의 불리함을 덮어나갔다. 알파고는 우하귀에 백집을 향해 큰 의미 없는 젖히기를 시도했고 이세돌 9단은 알차게 좌변에서 날일자로 뛰며 실리를 챙겼다.

하지만 현존 최고의 AI는 무심하게 최상의 곳을 선택하며 미세한 국면을 유지시켰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은 초읽기 1분을 십분 활용하며 맞섰다.

고군분투하던 알파고는 결국 초읽기 돌입 직전인 180수만에 돌을 던졌다.

전문가들은 이날 대국에 대해 “알파고가 그랬듯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승부 속에서 진화했다”고 평가했다. 본연의 적극적이고 활발한 행보(1국), 철저한 실리 위주의 대응(2국), 약점으로 지목한 ‘패’를 활용하려는 전략(3국)이 무위로 끝난 상태에서 ‘전략·전술의 예기치 않은 변화’라는 승리전략을 끌어냈다는 것이다.

해설자들은 알파고에 대해 “끝내기를 잘 하긴 하지만 최상의 수준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의 최고경영자(CEO)는 대국 직후 트위터를 통해 “그는(이세돌 9단) 오늘 알파고를 회복할 수 없는 실수로 몰아넣었다”고 평가했다.

이승제 금융증권부장 openey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