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Place] 윤동주 하숙집터·문학관
“어? 여기가 윤동주 하숙집터래?”
지나가는 젊은 연인이 외친다. 파스텔톤의 초록·노랑·보라·핑크와 검정 비닐우산이 매달린 곳의 벽에는 ‘서시’가 붙어 있었다.
좀체 눈에 띄지 않는 이곳이 서울 종로구 누상동 9번지, 연희전문학교 문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1941년 스물다섯의 청년 윤동주가 시인의 꿈을 키웠던 하숙집이다. 내내 기숙사 생활을 하며 답답해하던 시인 지망생이 일상으로의 탈출을 시도한 첫 공간이기도 했다.
여자친구와 서촌데이트에 나섰다 우연히 이곳을 발견했다는 박형기(27)씨는 “서촌에 자주 오는 편인데 여긴 처음 봤다. 요 앞 박노수 미술관도 가고 그랬는데…”라며 신기해했다.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서촌길 끄트머리 주택가 골목에 자리잡은 하숙집에서 윤동주는 그 유명한 ‘별 헤는 밤’, ‘자화상’, ‘쉽게 씨워진 詩’를 썼다. 아침이면 인왕산 자락을 올라 숲속 작은 약수터에서 세수를 하고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을 테고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기도 했을 터다.
저녁이면 하숙집주인인 극작가이자 소설가 김송과 문학을 이야기하고 그의 성악가 출신 아내의 노래를 감상하곤 했다고 알려진다. 당시 함께 하숙을 했던 후배 정병욱이 쓴 회고록에는 이 하숙집에 머물던 4개월 남짓을 “인생에서 가장 알찬 시간을 보낸 게 아닌가 생각한다 말했다”고 적었다.
◇1년 10만명 이상이 다녀가는 윤동주문학관
이 하숙집터에서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골목을 따라 청운초등학교, 경기상업고등학교 등의 앞을 거쳐 30분 정도를 걸으면 도착하는 곳이 윤동주문학관이다.
“시 하나 하나가 다 감동이네요.”
눈이 펑펑 내리던 2월 28일 인왕산 등산을 마치고 들렀다는 두 중년의 등산객은 감탄에 더 이상의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시가 주는 여운에 한동안을 서 있기만 했다. 문을 닫는 6시를 30분 앞두고 부랴부랴 뛰어들어 “잠시라도 안보면 안될 것 같다”는 이들도 있었다.
이곳의 이근혜 해설사는 “저런 분들이 꽤 많다. 한번 들렀다 좋아서 오고 또 오고, 그러다 지인을 데리고 오고…여러 차례 방문하는 게 특징”이라며 “올 때마다 다른 것을 보고 다른 감동을 느낀다고들 하신다”고 전한다.
많을 때는 하루 1500명이 다녀가기도 하는 윤동주문학관의 연간 방문객은 10만 6000명에 이른다.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이 건물은 청운동 주민들이 출퇴근길에 하루 두 번은 보는 곳이에요.”
애당초 종로구 청운동의 수도가압장이자 물탱크로 쓰였던 이 건물은 1974년 지어진 공공건물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7년 정도 방치되다 2012년 7월 22일 윤동주문학관을 개관했다.
지어지는 데만 400일, ‘상업화’를 우려해 극구 반대하는 유가족들을 오랜 기간 설득해 열린, 관람료도 그 어떤 상업행위도 일절 없는 오롯이 시인의 공간이다.
“종로구의 청운동, 효자동, 옥인동 등은 예전부터, 실제로 따지면 조선시대부터 예술가들의 터전이었어요. 경복고등학교 주변은 겸재 정선, 청운초등학교는 송강 정철의 집터기도 했죠.”
◇영혼의 가압장, 그곳에선 누구나 시인이 된다
허름하게 얼룩덜룩한 벽,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물탱크의 네모난 입구,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나무 등으로 묘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이 공간은 우물 안을 여행하는 느낌을 선사한다. 마치 ‘별 헤는 밤’이 쓰여졌을 것 같은 상상을 하게 하는 공간에서 올려다 본 네모난 하늘과 앙상한 나뭇가지는 시인의 마음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시인의 마음, 자유 향한 갈망 그리고 먹먹함
그리고 마지막 굳게 닫힌 문을 옆으로 밀고 들어서면 깜깜한 데 한줄기 빛만이 떨어지는 공간을 만날 수 있다.
물탱크를 그대로 두고 재현한 제3전시실은 윤동주의 삶을 다룬 13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곳이다.
빛이 떨어지는 구멍은 물탱크의 입구였던 곳으로 수돗물을 체크하기 위해 사용했던 사다리도 끊어진 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영상이 상영되기 시작하면서 휑댕그런 공간의 한줄기 빛마저 사라져 버린다.
유약하기만한 조국에 도움이 되고자 올랐던 유학길,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 오르기 위해 도항증에 쓸 창씨개명으로 고뇌했던 시인의 참담함, 일본에서 한글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형무소에 수감돼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갈망 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공간이다.
이유 모를 주사를 맞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막막했을 시인의 미래는 한줄기 빛과 끊어진 사다리로 시인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하게 한다. 나이든 장년층부터 아직은 어린아이까지 영상이 끝나고도 한참을 일어설 수 없게 만드는 먹먹함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근혜 해설사가 전하는 "방문객 중에는 이런 사람도 있다"
글·사진 =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