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된 파국이다. 9·15 합의는 노동개혁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모호하기 짝이 없는 타협이었다. 합의문은 파견업종 확대,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등의 핵심 현안을 중장기 과제로 돌렸고, 일반해고,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등 민감한 문제는 ‘충분한 협의후 시행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한노총은 이들 사안의 논의를 회피함으로써 결국 시간끌기용으로 변질됐다.
노사정 합의에 집착해 개혁을 추진한 것부터 잘못됐다. 한노총은 전체 근로자의 5%에 불과한 대기업 기득권 노조의 대변자다. 그 자체가 개혁 대상이자 이해당사자인 한노총과의 합의로 어떻게 개혁을 이뤄낼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노동개혁의 전범(典範)인 독일의 2002년 하르츠 개혁도 노사정위원회 합의가 실패한 뒤 정부가 노동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전문가위원회를 밀어붙여 성공한 것이다.
이미 정년연장 등의 이득을 챙긴 뒤 한노총이 정부의 2대 지침을 거부하면서 대타협을 파기한 것은 비정규직과 청년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들 지침은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여 심각한 실업률을 낮추고 청년들의 고용을 늘리기 위한 최우선 과제다.
노동개혁은 결국 정부 몫이다. 정부는 이제 노사정 합의를 통해 개혁을 이루겠다는 기대를 접어야 한다. 기간제법을 제외해도 나머지 노동개혁 4법의 국회 처리 전망은 여전히 어둡고, 한노총의 대타협 파기로 개혁 추진은 보다 험난해질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더 비상한 각오로 흔들림없이, 청년들과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한 노동개혁을 완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