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기업 무더기 신용강등, 시스템 위기 막아야

사설
입력일 2015-11-08 17:04 수정일 2015-11-08 17:16 발행일 2015-11-0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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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신용등급이 떨어진 국내 기업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로 나타났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 가운데 한국신용평가는 올해 45개 기업의 등급을 하향 조정했고, 나이스신용평가는 56개사, 한국기업평가는 42개사의 등급을 내렸다. 외환위기 때의 61개사 이래 가장 많고,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30여개보다 훨씬 늘어났다.

직접적인 이유는 대기업들의 잇따른 ‘실적 쇼크’다. 장기 불황에 시달려온 조선·해운·건설 등의 업종 말고도, 그동안 ‘제조업 한국’을 지켜온 전자·석유화학·철강 등 주력 업종 모두가 쇠퇴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기업경영분석 자료에서도 작년 제조업 매출액이 1.6% 줄었다. 제조업 매출 감소는 1961년 이후 처음이다.

주요 그룹도 실적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신용등급 하락을 비켜가지 못했다. 삼성을 비롯한 포스코, SK, 두산, GS, 한진 등의 주요 계열사들도 무더기로 강등됐다. 신용 하락은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을 높인다. 우량기업까지 신용경색(梗塞)의 덫에 갇혀 부채위험이 커지면서 멀쩡한 기업도 부실화되고 한국 경제 전체가 휘청거리는 악순환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경기 회복이 계속 늦어지고, 중국 성장 둔화, 엔화 약세로 기업 환경은 더 나빠질 전망이고 수출 부진도 당분간 타개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저금리 기조에서 빚에 의존해 온 기업의 부담은 미국 금리인상 이후 더 커질게 불문가지다.

기업들의 신용경색에 따른 경제의 시스템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결국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 속도를 높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미국 금리인상이 본격화하기 전에 서둘러 부실기업 정리를 마무리하는 것이 급선무다. 조선·해운·철강·건설 등 과잉공급 업종을 신속·과감하게 정리하고, 성장가능성과 부가가치 높은 산업에 자원 투입을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기업 구조조정의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