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오후', 차이밍량 감독 "다시 태어나면 연출 안해"

이희승 기자
입력일 2015-10-08 15:51 수정일 2015-10-08 15:55 발행일 2015-10-08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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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타일 맞출 한국 배우 연락 달라
관객과 배급 신경 안 쓰는 스타일
앞으로도 '고정관념' 깨는 영화 만들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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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같은 공간에서 20년지기 친구와 나눈 대화를 영화로 만든 차이밍량 감독.(사진제공=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

“다시 태어난다면 영화 감독은 안 할 거다.”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선두주자 차이밍량 감독(58)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올해로 스무살을 맞이한 부산 국제 영화제를 초창기부터 봐 왔던 그는 “올 때마다 점점 커지고 모든 시설과 준비가 좋아지고 있다. 아시아 최고 영화제 답다”며 감회에 젖었다.

말레이시아 화교 출신인 그는 퀴어 시네마와 파격 노출, 자유로운 상상력을 스크린에 옮기기로 유명하다.

그가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흔들리는 구름’, ‘떠돌이개’, ‘구멍’, ‘하류’를 보노라면 유쾌하면서도 상상 이상의 ‘그 무엇’을 스크린에 담는 용기에 단번에 매료된다.

올해에는 그의 절친이자 페르소나인 이강생(47)과의 대화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오후’를 들고 왔다.

별다른 내용 없이 서로의 근황과 안부, 과거의 이야기를 약 2시간 가까이 주고 받는 대화가 무미건조하게 펼쳐진다.

누군가 봤다면 ‘뭐 이런 게 영화야?’할 것 같지만 감독과 배우, 형과 동생, 죽마고우로 지낸 두 사람의 관계를 안다면 꼭 봐야 할 영화다.

최근 몇년 간 작가주의에 충실한 차이밍량 감독의 영화를 외면하는 관객과 과도한 정부 검열로 인해 우울증에 걸렸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계획적으로 영화를 찍는 줄 알지만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무계획이 계획이에요. 앞으로도 기회가 있으면 찍고 아니면 안 찍을 거예요. 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는 계속 오고 싶어요. (옆에 앉은 이강생을 가리키며)이 분은 15번이나 부산에 왔는데도 항상 새롭다네요다. 이렇게라도 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나는 게 좋아요. 제 영화가 한국 극장에 걸릴 수는 없으니까요. 하하. 이건 아마도 부산국제영화제의 영원한 화두 아닐까요? 영화는 창작인데 상업적인 면도 함께 고려해가야 하는 것.”

극 중 두 사람은 서로 겹치는 필모그래피를 읊으며 ‘다음 생에서는 서로 역할을 바꿔 태어나자’고 한다. 이강생은 감독으로, 차이밍량은 배우로. 지겨울 법도 한데 차이밍량 감독의 대답은 많은 울림을 준다. 하나의 상품으로 보지 않는 이상 사람은 지겨울 게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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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같은 사이의 이강생과의 한때. 영화 ‘오후’의 한장면.(사진제공=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

“엄마도 매일 보는데 지겹지 않잖아요. 만나다 보면 싸우기도 하고 의견도 다르지만 우리는 가족이니까 그럴 일이 없죠. 아마 배우로서 지겹지 않느냐는 질문이라면 ‘물론 신선하지 않으니 잘못’이라고 말하겠죠. 하지만 영화는 생활에서 나오는 거니, 그걸 버리면서까지 다른 배우랑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내 영화’가 아니잖아요.”

그의 최근작 ‘오후’는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이다. 현지 언론으로부터 들었던 가장 기쁜 말은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한 영화를 찍어줘서 고맙다’였다. 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영화를 찍고싶은 속마음을 들킨 것만 같았다고. 그에게 ‘좋은 영화’에 대한 정의를 물으니 전적으로 관객에게 달려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저는 예술영화를 찍는 감독이에요. 관객과 시장은 신경 쓰지 않고 마음대로 영화를 만들죠. 그걸 신경 쓰는 순간 그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찍고 있게 될 테니까요. 사실 저는 영화를 만드는 게 좀 지겨워지고 있는 상황이에요. 다행히 아직까지 제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이 없어서 안 질리는 것 같아요. 한국배우? 제 영화는 홍콩영화 스타일이니 관심 있으면 연락주세요.(웃음)”

부산=이희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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