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빼기를 통한 더하기 그리고 곱하기, ‘뺄셈의 리더십’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5-10-02 07:00 수정일 2015-10-18 13:38 발행일 2015-10-0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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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일이 있는데 새로운 일을 또 떠맡다 보니 야근이 당연해졌어요. 새로운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 일을 또 떠맡게 될까 몸을 사리고 있죠.”

자동차 관련 외국인 회사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근무 중인 H씨는 이번 추석 연휴에도 이틀이나 회사에서 일을 했다. 이 회사에서만 15년을 근속한 그는 몇 년 전까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쁜 일과에도 정해진 휴가일수를 한껏 누리며 사내 표창을 받기도 했다.

PM으로서 입지를 다진다는 성취감도 근속연수만큼 늘어가는 일에 흐릿해져 갔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길 줄만 알았지 기존의 일을 덜어주지 않는 보스 덕분(?)에 H씨의 업무는 늘기만 한다. ‘잘하니까’라는 평가와 적지 않은 ‘인센티브’로 H씨에게 일을 몰아주니 그는 “고작 돈으로 보상받는 일인데…대충 해버릴까 생각한 적도 없지 않다”고 호소한다.

이 같은 호소는 비단 H씨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의 직장인은 서글프다. 하루 중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는 것도 모자라 네트워크 고속화와 스마트폰 상용화로 사무실을 떠나서도 업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일해도 하루가 24시간이라는 당연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턴가는 찰나의 여유가 ‘게으름’처럼 인지되기도 한다. 이 같은 일상이 반복되면서 반갑던 ‘인센티브’가 족쇄처럼 느껴지고 너무 적은 것 같아 억울함과 서글픔은 짙어진다.

더하기만 하는 리더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책 ‘뺄셈의 리더십’이 발간됐다. 저자 김인수는 네이버에 ‘사람이니까 경영이다’를 연재하며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돌팔이 경영’ 퇴치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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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에서 7가지 뺄셈의 법칙을 제안한다. 책에서 말하는 ‘빼기’의 7가지 대상은 판단, 통제·관리, 말, 자신감, 야근, 악질, 인센티브다. ‘확증편향’이라는 말이 있다.

대화를 많이 하고 의견을 수렴하며 소통하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리더가 직원을 ‘판단’하고 ‘분류’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100여명에 달하는 스태프를 총괄하는 뮤지컬의 장유정 연출도 “확증편향이 나 스스로를 움츠러들게 하고 자만감에 빠지게 하며 귀를 닫게 했다”며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고백한 바 있다. 

일 잘하던 직원에 대한 고객사의 부정적 평가를 접하고, 노력했지만 안좋은 결과를 도출하는 순간 통제와 관리, 잔소리에 가까운 당부를 반복하게 된다.

직원 자체에 대한 신뢰보다는 평가에만 집중하고 과정보다는 성과를 우대하는 회사 분위기로 인해 열심히 일하던 직원은 어느 순간 그 어떤 일도 스스로 하려 들지 않는다.

이처럼 판단과 통제·관리는 순응을 낳고 순응은 가장 먼저 출근해 가장 늦게야 사무실을 나서는 리더, 휴일에도 어김없이 회사를 찾는 임원 등의 눈치만 살피는 직원들을 양산한다. “성과 혹은 숫자가 곧 인격”임을 운운하며 성과만 좋으면 그 어떤 잘못이나 악질 행위도 눈감아주거나 자신의 비위를 맞추는 이들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는 리더에게 필요한 것이 ‘판단’, ‘통제·관리’, ‘악질’, ‘말’ 빼기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한국을 ‘야근공화국’이라고 표현한 저자는 자정을 넘어 퇴근을 기다리는 직원에게 플랜 B도 아닌 D까지를 세우라는 팀장의 사례로 ‘야근’ 빼기를 설명한다. 상사가 한 말은 “부장님 결제 도중에 먼저 퇴근할 것도 아니잖아. 시간도 남는데”다.

부장이 퇴근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퇴근할 수 없으며 쓸 데 없는 일에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업무 집중도와 효율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새로운 일이 누군가에게 주어질 때는 그의 기존 일을 다른 이에게 맡기는 적절한 업무 배분이나 시스템 개선, 사내 문화 쇄신 없이 ‘야근’을 하지 말라는 것은 억지다. 이들의 빼기와 더하기 역시 리더의 몫이다.

‘인센티브’ 빼기에 대해 저자는 인간이 추구하는 내적가치 ‘ARC’를 근거로 든다. 인간은 자율(Autonomy)적으로 공동체와의 연결(Relatedness)을 통해 자신의 역량(Competence)을 키우고 싶어한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적은 월급도 감수하는 존재가 사람이다. 수학의 빼기와 달리 인간의 빼기가 더하기 혹은 곱하기가 되는 이유다.

‘인센티브’에 초반에는 성과를 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점점 일에 대한 성취감이 아닌 돈을 좇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고 이는 창조성과 내적 동기를 파괴한다는 주장이다. ‘인센티브’를 반기는 직원이 위험한 존재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보너스 없이 애초부터 높은 급여를 주라’고 조언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빼기 대상 7가지는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유기적으로 작용하며 조직을 좀먹는다. 이 책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뺄셈의 리더십’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이다. 이에 ‘빼기’의 목표는 성과가 아닌 조직원의 성장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 없는 ‘돌팔이 리더십’이 성과를 갉아 먹고, ‘빼기’가 곧 ‘더하기’ 혹은 ‘곱하기’가 되는 이유다. 명태 출판, 가격 1만7000원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