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의 성대리, 배우 태인호의 변신 제 19회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작 10일 개봉
살인범은 두명의 피해자를 낳는다. 하나는 그에 의해 죽은 희생자, 다른 하나는 살인범에도 있을 가족이다. 그 가족은 ‘잔혹한 살인범의 가족’이라 낙인 찍혀 평생 죄인처럼 살아간다.
과거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연쇄 살인범 유영철도 아들 앞에선 냉정함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럼 그의 아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손승웅 감독은 이 의문으로 영화 ‘영도’를 시작했다.
‘영도’는 부산에 있는 작은 섬 ‘영도’를 배경으로 연쇄 살인범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비참한 운명을 사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의 이름도 영도(태인호)다. 세상의 삐딱한 시선 속에서 폭력적으로 성장한 영도는 경찰의 감시 아래 살아간다. 영도를 마음대로 떠날 수도 없는 신분이다.
영도는 작은 섬과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에 갇혀 피해자이지만 죄인처럼 살아간다. 그런 영도가 살해된 부모의 복수를 하겠다고 찾아온 한 여인 미란(이상희)을 만나면서 변해간다.
작은 영화지만 자극적인 소재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그 폭발력이 대단하다. 그 중심에는 영도 역을 연기한 배우 태인호가 있다. 그가 보여주는 무게감은 드라마 ‘미생’에서 보여준 얄미운 상사 ‘성대리’와는 전혀 다르다.
그는 사람들의 멸시 속에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영도를 훌륭히 연기했다. 극중 말이 많이 없는 영도는 주로 눈빛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그 속엔 생기 대신 독기만이 가득하다. 영도의 처절한 상황을 묘사하는 데 태인호의 눈빛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대중에게 태인호란 이름은 낯설다. 본명보다 ‘성 대리’가 먼저 떠오른다.
이번 영화엔 태인호가 오랜 극단생활과 영화, 드라마로 쌓은 연기 내공이 유감없이 담겼다. 그 결과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생’ 속 태인호의 얼굴이 지워진다.
그리곤 비참한 운명 속에서 헤어나려오려고 발버둥치는 영도의 암울한 이미지가 태인호의 얼굴을 뒤덮는다. ‘영도’는 대중에게 ‘성대리’ 대신 태인호의 이름을 기억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됐다. 소개된 섹션은 ‘한국 영화의 오늘-비전’이다.국내에서 만들어진 수준 높은 독립 영화를 조명하는 섹션으로 새로운 소재, 신선한 연출, 새로운 방식 등 실험적인 작품이 소개된다.
당시 ‘영도’는 사회 이면에 감춰진 어둠은 수면 위로 드려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살인범이 남긴 또 다른 피해자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 ‘영도’는 오는 10일 개봉한다.
김동민 기자 7000-ja@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