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헤지펀드 약탈, 애국심만으로 막을 수 없다

사설
입력일 2015-07-19 17:19 수정일 2015-07-19 17:19 발행일 2015-07-2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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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이 지난 17일 우여곡절 끝에 통과됐다. 이로써 삼성은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공격을 일단 막아냈고,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경영권 승계 작업도 탄력을 받게 됐다. 하지만 싸움은 앞으로도 더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엘리엇은 합병무효 청구 소송, 경영 간섭 등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집요하게 삼성 흔들기에 나서면서 원하는 수익을 챙기려 할게 틀림없다. 소송전은 엘리엇의 장기다.

이번 엘리엇과 삼성의 분쟁 과정과 결과는 우리 기업, 또 우리 사회에 많은 숙제를 던졌다. 우선 엘리엇의 공격으로부터 삼성을 지켜낸 것은, 한국 대표기업을 국제 투기펀드의 먹잇감으로 내줄 수 없다는 수많은 소액 주주들의 애국심이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 또한 합병 비율 등에 불만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 삼성이 확실히 자각해야할 대목으로, 향후 주주친화적 경영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운 교훈이다. 삼성이 약속한 통합 기업의 미래 비전 실천과 주주가치 제고로 보답해야 함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될 이유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로 우리 기업들이 언제든 국제 투기펀드의 공격에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지배구조의 취약성과, 그것을 막아낼 수 있는 경영권 방어수단 부재(不在)의 문제가 다시 극명하게 노출됐다. 만일 한국에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존재했다면, 또 삼성이 자신들의 공격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과연 엘리엇이 이처럼 쉽게 국내 굴지의 삼성물산을 먹잇감으로 삼는 것이 가능했을까? 간단히 답이 나오는 문제다.

우리 자본시장은 이미 국제 투기펀드들의 약탈 대상이 된지 오래다. 시장개방으로 문을 활짝 열기만 했지 방패로 삼을만한 아무런 수단이라고는 없는, 헤지펀드 공격의 최대 취약국인 탓이다. 그동안 타이거펀드, 소버린, 헤르메스, 칼 아이칸, 론스타 등 많은 투기펀드들이 삼성과 SK, KT&G 등을 공격했다. 그들이 우리가 피땀흘려 키운 국가적 자산을 수시로 유린하고 막대한 차익을 챙긴 후 ‘먹튀’를 일삼아도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투기펀드들의 공격이 빈번해질 것은 불보듯 뻔한데, 언제까지 이번처럼 국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감성적 대응에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 이상의 국부유출을 막기 위한 제도적·법적 경영권 방어장치를 당장 마련해야 할 당위성이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 필(poison pill) 등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일반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글로벌 수준에서 최소한의 보호 제도만 도입해도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런 재계의 요구와 입법 논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그런데도 반(反)기업 정서에 매몰된 시민단체, 진보 정치세력의 끊임없는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이는 우리 기업들이 투자와 성장, 고용창출에 쏟아야할 귀중한 자원과 역량, 시간을 경영권 안정, 지배력 강화에 허비하는 심각한 부작용만 가져왔을 뿐이다.

이번 엘리엇 공격의 빌미가 된 우리 대기업들의 취약한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물론 급하다. 하지만 이는 중장기적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지금은 기업들의 모든 경영역량을 투자와 일자리 확대에 집중해도 가라앉은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조차 의문인 상황이다.

우리의 경영권 보호 입법은 이제 한시도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당장 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국제 투기펀드의 제2·제3의 공격은 또 되풀이되고, 경영권 방어를 위한 우리 기업들의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소모적인 출혈은 멈춰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나라 경제의 심각한 손실, 국민의 피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