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산 합의 하루도 안돼 日 ‘강제노역 없었다’ 번복

김동민 기자
입력일 2015-07-06 16:37 수정일 2015-07-06 18:56 발행일 2015-07-07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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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책임 회피 목적인 듯… 우리 정부 부실외교 도마 위
조선인 강제노동 현장 세계유산 등재<YONHAP NO-2793>
<p>최근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된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미쓰비시 해저 탄광이 있었던 곳으로 조선인 강제징용의 현장이기도 하다(사진=연합)
브릿지경제 김동민 기자 = 일본 산업혁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겠다던 일본이 한-일간 합의 하루 만에 이를 번복하고 나서 비난을 사고 있다. 우회적이긴 하지만 강제 노역사실을 문구로 반영한다는 약속에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했던 우리 측으로선 뒷통수를 맞은 셈이다.

최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일 양측이 막판에 극적 합의로 등재 결정문 통과를 이끌어내 전 세계는 양국에 찬사를 보냈다. 의장인 마리아 뵈머 독일 외무차관이 “전체 위원국들을 크게 감동시켰다”며 “외교의 탁월한 승리이며 이로써 한-일은 우정의 기초를 놓게 되었다”고 극찬했다.

문제의 시작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이 일본기자들에게 ‘Forced to work under harsh conditions in the 1940s’라고 위원회에 설명한 사토 구니(佐藤地) 유네스코 일본 대사의 표현에 대해 “이것이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하면서다.

당초 우리 정부는 일본이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강제로 노역했다는 사실이 인정되었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사실상 처음으로 일본 정부가 국제사회 앞에서 공식적으로 언급했다”며 상당한 의미까지 부여했다. ‘Forced to work’를 일본은 단순히 ‘일했다’ 정도로 이해한 것을 우리는 ‘Forced’라는 단어에 넘어가 섣부른 축배를 든 것이다.

일본이 뒤늦게 강제노역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일본 내 보수여론을 잠재우려는 의도가 어느 정도 깔려있다. 더불어 태평양전쟁의 강제징용 보상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이미 해결됐음을 거듭 강조하려는 뜻도 담겨 있다.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했다가 자칫 향후 정부간 혹은 민간 차원의 소송이 제기될 경우 복잡해 질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런 일본의 꼼수에 한국 정부가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일본이 강제성을 결정문에 명시하지 못하겠다고 버티자 결정문 주석에 한 줄 붙이는 것으로 면피하려 했다. 징용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 등으로 만들기로 한 ‘정보센터’ 설치 및 운영에 관해서도 확실하게 합의된 것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마디로 ‘부실합의’라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2중, 3중으로 일본의 약속 이행 여부를 점검하겠다는 입장이다. 2018년에 열릴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일본 정부의 권고 이행 상황을 직접 점검하니 나름의 안전장치라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구체적인 기준 없이 그저 일본이 양심적으로 조치할 테니 믿고 기다려 보자는 말과 다름 아니다. 일본에 관한 한 무기력한 한국 외교의 자화상이다.

일본에 강제징용된 아픈 역사를 함께 겪은 중국은 우리와는 사뭇 다른 대처를 보였다. 중국대표단은 5일(현지시간) “강제 노동(Forced labor) 사용을 둘러싼 전체적인 사실들에 대해 일본의 설명(account)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덧붙여 “일본이 역사를 직면하고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특히 “모든 개개인의 강제노동에 대한 고통이 기억되고 이들의 존엄성이 지켜질 수 있도록 확실히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여 우리와 대조를 보였다.

김동민 기자 7000-ja@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