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경성학교’ 세 가지 색 RED 인터뷰 ③] ‘청순’ 레드 박보영, 성숙함이 자연스러워지기를 기다리는 소녀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5-06-23 15:51 수정일 2015-06-26 18:46 발행일 2015-06-23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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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 허미선 기자 = “주란이는 많이 안타깝고 먹먹한 캐릭터예요. 그래서 마음이 더 가요. (시대와 어른들의 욕망으로) 피해를 보는 소녀들 중 한명이잖아요.”

빨간 원피스를 입고 계단을 오르는 주란은 소공녀를 연상시킨다. 제나 할러웨이 사진을 보는 듯 물속에서 흔들리는 소녀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주란은 처연하다. 그리고 예쁘다. 그 주란을 연기하는 배우가 박보영이어서 더욱 처연하고 예쁘다.

“일단 너무 힘들었어요. 그 장면은. 감독님께서 ‘죽어서도 예쁜 걸 해보고 싶어, 최대한 예쁜 거’라고 하셨어요. 흔들어봐, 잠깐 숨 좀 멈춰봐, 눈 떠봐, 머리 흐트러뜨려 봐…. 할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숨 참고 있는데 누군가 와서 얼굴 예쁘게 만져주시고 몸도 흔들어야 하고 기포도 나오면 안되고…그 두 장면을 이틀씩이나 찍었어요.”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이하 경성학교) 속 박보영은 유난히 어리고 예쁘다. ‘소녀’라는 단어가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 배우가 박보영 말고 또 있을까 싶게 딱 떨어지는 ‘소녀’다.

◇그녀는 너무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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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소녀? 지금까지는 못본 박보영의 얼굴로!(사진제공=피데스스파티윰)

“예쁜 소녀가 벚꽃이 흐드러진, 꽃잎 날리는 봄날 나무 아래 서 있는데 예쁜 원피스에 빨간 피가 묻은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기획했어요.”

이해영 감독의 표현처럼 소녀적 감성과 섬뜩하고 선명한 레드의 조합은 박보영을 만나면서 청순하고 처연한 레드로 발현됐다. 영화 ‘경성학교’ 속 박보영은 선명한 레드와 어우러지지만 이상하게 유약하며 청순하다.

“감독님께서 ‘이제껏 너한테 못 봤던 얼굴을 쓰고 싶어’라고 말씀하셨어요. 거울을 들여다보며 아무리 연습해도 도대체 나한테 쓰지 않은 얼굴이 뭔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엄청 고민했죠.”

그렇게 시작된 고민은 촬영장에서도, 영화가 개봉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해영 감독의 “예쁜 걸 해보고 싶어”와 “너한테 못 봤던 얼굴을 쓰고 싶어”는 결국 많은 것을 요구하겠다는 의미였던 모양이다. 물 속 장면을 시작으로 박보영의 고난은 마지막으로 갈수록 험난(?)해졌다.

약하기만 하던 주란이 멀리뛰기에서 3m89 기록을 내고 일본어로 귀엽게도 “산메또르 하치큐”라고 되내는 장면은 이 감독이 현장에서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연습할 틈도 없이 즉석으로 내뱉은 일본어 대사는 이해영 감독이 “벨소리로 만들어 가지고 다니고 싶다”고 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이토록 만족스러운 즉석 일본어 연기가 가능했던 건 에구치(박세인) 덕분이었다.

“체육시간마다 에구치가 기록을 재느라 혼자 따로 있고 저희는 모여서 수다를 떨곤 했어요. 에구치를 연기하는 친구가 귀엽고 애교도 많아요. 전부 연기하는 친구들이다 보니 에구치 말투를 장난처럼 따라하면서 익숙해져 있었죠.”

박보영이 고난을 감내할수록 영화 속 주란은 점점 더 예뻐진다. 하물며 제 몸의 몇배는 되보이는 문짝을 들고 분노할 때도 밉지 않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는데 머리를 하나로 묶어 올린 상태에서 정면으로 찍으니까 얼굴이 완전 땡그랗게 나오는 거예요. 저 뿐 아니라 소녀들 전부 귀밑머리를 사수하느라 난리였죠. 저는 하물며 누워있는 장면도 많아서 분장 팀이 저 때문에 정말 고생 많이 하셨어요.”

소녀들은 몰래 셰딩(얼굴의 윤각을 살려 작아보이게 하는 화장법)을 하느라 난리법석이고 메이크업팀은 말리느라 실랑이가 벌어지곤 했다. 박보영은 후반부 산발로 촬영을 하면서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저희들끼리는 ‘거지머리’라고 하는데 대놓고 지저분해도 되니까 너무 좋았어요.”

◇소녀들은 힘이 세다, ‘동안’ 고민도 저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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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함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기다릴 줄 알게 된 박보영은 그만큼 성장했다.(사진제공=피데스스파티윰)

한국 나이로 벌써 스물여섯 여전히 교복이 잘 어울리는 그의 고민은 지난해까지도 너무 어려보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또래 친구들이 연기하는 소녀들과 함께 했던 ‘경성학교’는 박보영에게 ‘기다림’을 받아들이게 했다. 주변에서 이제 교복은 그만 입어야지 않겠냐는 우려를 보내지만 그는 이제 꽤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제가 딱 그 시기예요. 교복을 입거나 멜로를 하거나…. 지금 멜로를 할 준비는 안됐으니 교복을 입더라도 하나라도 더 해볼 수 있는 게 어디예요. 지난해까지는 고민이 많았는데 이젠 많이 생각 안하기로 했어요. 제가 성숙한 역할을 한다해도 안 어울린다고 봐주시질 않으면 소용 없게 돼 버리잖아요.”

교복에 대한 고민 전에는 시나리오가 재밌는지, 스스로가 하고 싶은 작품인지가 선택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교복’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면서부터 작품 선택의 폭은 좁아지고 용기를 내기도 힘들어졌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 다시 어려지는 것에 대해, 또 교복을 입어야하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멜로 역시 자연스럽게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경험해 보고 표현할 줄을 알아야 멜로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좋아는 해보고 사랑은 안해본 느낌이에요. 가슴이 찌릿한 적이 없어서…아직 제대로 된 사랑을 못했구나를 깨달았죠.”

그런 그에게 노출 연기나 섹시한 느낌을 기대하기란 스스로도 어려운 일이다. 사실 섹시함에는 많은 노출도 필요 없다. 다리라인이나 짙은 화장, 타이트한 의상 등으로 상상만 불러 일으켜도 꽤 성공적이기 때문이다.

“저를 두고 상상을 하실까요? 얼마 전 잡지 화보에서 해봤는데 예전보다는 괜찮아진 거 같아요. 조금만 기다리면 될 것 같아요. 멜로는 경험을 안해보고 표현하면 잘 못할 것 같아요. ‘늑대소년’ 정도의 표현은 가능한데 나머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해요.”

그렇게 박보영은 어려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성숙함'이 자연스러워지길 기다릴 줄 아는 배우로 성장하고 있었다.

◇닮고 싶은 선후배, 해피 바이러스 엄지원, 당당한 신인 박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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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영은 닮고 싶은 선배 엄지원과 당당한 신인 박소담, 유쾌한 소녀들과 함께해 행복했다고 털어놓는다.(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엄지원) 선배님이 나오시는 날은 해피한 날이었어요. 선배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정리되지 않았던 것들이 알아서 정리되고 그랬거든요.”

게다가 나이는 또래지만 경력은 독보적으로 많은 박보영은 함께 출연했던 소녀들로 인해 힘을 얻었고 스스로를 더욱 다잡을 수 있었다.

“신인들이다 보니 엄청 열심히 해요. ‘언니 왜 또 찍어요?’, ‘뒤집는 게 뭐예요’ 등 순수하게 와서 이것저것 물어봐요. 잠옷을 입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묻고는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너무 귀여운 거예요. 도와줄 수 있는 부분들은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고 알려주고 싶고…. 힘이 들기 보다는 재미있었어요.”

신인들의 열정은 “내가 이럴 때가 아니구나, 나도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단짝친구인 연덕을 연기한 박소담 역시 신인이지만 박보영에게는 또 다른 배울 점을 가진 동료였다.

“감독님도, (엄지원) 선배님도 경험이 많지 않은 친구라 주눅이 들까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전혀 떨지 않고 너무 잘해서 부러웠어요. 저는 현장에서 눈치를 많이 보거든요. 좀 배워야겠다 생각했죠.”

◇잣 까는 박보영을 탄생시킨 유카의 나무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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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weight: normal;">소녀의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잣 까는’ 박보영으로 회자되고 있다.(사진제공=피데스스파티윰)

연덕(박소담)과 상위를 다투는 경쟁자였던 유카(공예지)가 나무에 매달리는 신은 영화 ‘경성학교’의 장관 중 하나다.

가나에 교장을 연기한 엄지원이 “죽을 때 저렇게 예뻐도 되는 거야?”라고 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이 장면은 ‘경성학교’ 기자간담회에서 언급되면서 궁금증을 자아낸 ‘잣 까는’ 박보영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유카 언니가 나무에 매달리는 신은 크레인을 타고 올라가야하는데 탈 수 있는 인원은 한정돼 있었어요. 저는 운동장에서 대기하고 있었죠. 땡볕에 앉아 있다 스태프들께서 까주신 (자연산) 잣을 하나씩 받아먹는데 너무 맛있는 거예요. 하나를 먹으면 두개를 까야한다고 하셔서 갑자기 깔 분량이 많아져버렸죠.”

그래서 틈나는대로 박보영은 스태프들 옆에 앉아 잣을 까 먹이며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전작에 대한 이야기부터 촬영장 분위기, 개인사까지 재잘재잘 즐거운 수다가 매일 이어졌다.

“왜 하필 잣나무여서…어감이 좀 이상하긴 한데 (잣 까는 시간은)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자연스럽게 스태프들과 많이 친해졌거든요.”

박보영이 까던 잣은 촬영 현장에 인접한 속리산에서 주운 것들이다. 촬영장면이 없어 쉬는 소녀들과 속리산 마실을 갔다 희한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속리산 정상 등반을 하고 사진을 찍는데 지나가는 분들이 ‘박보영 아냐?’, ‘미쳤냐? 쟤가 무슨 박보영이야’ 막 이러시는 거예요. 제 몰골이 굉장히 안좋구나 했죠.”

소녀들과의 유쾌한 기억들로 만들어낸 ‘경성학교’는 개봉 주말 ‘쥬라기 월드’, ‘극비수사’에 이어 박스오피스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아빠 혹은 오빠처럼 차태현과 ‘1박2일’ 그리고 7년만의 드라마 복귀작 ‘오 나의 귀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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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의 드라마 복귀작 ‘오 나의 여신님’과 개봉예정작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로 박보영은 조금 더 성숙한 캐릭터를 선보인다.(사진제공=CJ E&amp;M, NEW)

“저 부를 줄 알았어요. ‘여친사’ 특집 한다고 할 때부터 나밖에 없지 아빠 옆에 누가 또 있있겠어 했죠.”

박보영은 ‘과속스캔들’에서 아빠였던 차태현의 부름을 받고 ‘1박2일’ ‘여친사’(여자친구사람)특집에 출연했다. 예능에 나가도 아빠가 있으니 그저 든든할 따름이다.

“드라마 주연은 처음이니 잘 부탁드려요.”

최근 박보영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7월 3일부터 방송될 tvN ‘오 나의 귀신님’으로 7년만에 드라마에 복귀해 ‘교복을 입은 소녀’보다는 성숙한 여인을 연기한다.

7년만의 복귀작이자 첫 주연작 ‘오 나의 귀신님’에서 박보영은 소심한 주방 보조 나봉선을 연기한다. 어느 날 갑자기 빙의된 음탕한 처녀귀신(김슬기) 덕(?)에 순간순간 응큼해지며 웃음을 자아내는 캐릭터다.

“드라마는 무서웠던 기억이 많아요. 처음이고 혼도 많이 나고 그래서 두려운 기억이 컸는데 7년만에 드라마에 복귀하고 보니 호흡이 너무 빨라서 ‘어라?’하는 건 있는데 아직까지는 즐겁게 하고 있어요.”

개봉예정작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 역시 지금까지는 해보지 못한 캐릭터로 조금은 성숙해졌다. 자연스럽게 성숙해지길 기다릴 줄 알게 된 박보영은 그렇게 또 한발을 내딛는다. 이제껏 스스로도 보지 못했고 보여주지 못한 얼굴에 대한 고민과 함께.

글=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인포그래픽=이소연 기자 moomoo1828@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