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투자해야할 돈 자사주에 쏟아붓는 현실

사설
입력일 2015-06-21 17:32 수정일 2015-06-22 17:35 발행일 2015-06-22 2면
인쇄아이콘
국내 10대그룹 상장사들이 보유한 자사주(自社株)가 총 발행주식의 평균 3.26%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자사주는 기업이 자기자금으로 사들인 자기회사 주식이다. 그룹별 자사주 보유 비율은 현대중공업그룹 3개 계열사가 평균 11.67%나 되고, 한진(6개사) 6.59%, 삼성(18개사) 6.41%, 한화(7개사) 4.86% 등의 순이었다.

이들 자사주의 시장 가치는 천문학적 규모다. 주요 기업들이 자사주 취득에 쓰는 돈만 한 해 수십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자사주를 대거 매입하는 주된 목적은 적대적 기업인수·합병(M&A)에 대비해 경영권을 지키는 방패로 삼는데 있다. 이번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공격을 받은 삼성물산이 자사주를 KCC에 넘겨 우군으로 확보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기업들의 미래 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투자와 연구개발(R&D)에 들어가야할 막대한 자금이 경영권 방어용 자사주 매입에 새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SK와 KT&G가 소버린과 칼 아이칸에 당한데 이어 이번 엘리엇 사태에서 보듯, 외국 투기자본의 국내 기업 경영권 침탈은 이미 현실의 위기인데도 방어장치가 전무(全無)한 까닭이다.

우리 기업들이 너무 쉽게, 자주 외국 헤지펀드들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기업들은 막대한 돈을 자사주 매입에 쏟아부을 수 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투자 여력이 줄어들고 당면한 고용창출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자국 기간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는 세계 각국의 법·제도 장치는 많다. 미국의 ‘엑슨-플로리어법’은 기간산업에 대한 외국인의 적대적 M&A 위협이 있을 때 대통령이 이를 금지할 수 있게 했을 정도다.

포이즌 필(poison pill), 황금주, 차등의결권 제도도 미국 일본 프랑스 등은 오래 전 도입했다. 우리 기업들이 국제투기꾼들의 분탕질에 내몰리는 상황을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