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신경숙·전경린·데미안까지… 문학·출판계 '표절시비' 시끌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5-06-19 09:00 수정일 2015-06-19 11:35 발행일 2015-06-1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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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Talk] 베끼기도 전염? 대한민국 문단을 부탁해!

브릿지경제 허미선 기자 = 창작자를 지탱하는 힘은 ‘자존심’이다. 자신만의 것과 철학을 담은 창작품에 대해 대부분 창작자들은 ‘자식’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출산의 고통에 비견할 정도로 애정과 정성을 쏟는데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의미다. 

그 자존심은 ‘창작’의 고통으로 지켜진다. 그런 면에서 ‘표절논란’은 창작자의 자존심을 건 사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 문단이 ‘표절’ 논란으로 시끄럽다. 그 간에도 크고 작은 표절시비들은 있어 왔다. 하지만 그 논란의 중심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야 말로 국가적 ‘자존심’ 문제로 불거진다.

‘엄마를 부탁해’로 한국은 물론 세계 문단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신경숙 작가가 표절논란에 휩싸였다. 발단은 16일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응준 작가가 블로그에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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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 작가는 블로그를 통해 신경숙 작가의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해다고 주장했다.(사진=이응준 작가 블로그 캡처)

‘우국’과 ‘전설’의 문장을 비교하면서 시작한 이 글에서 이응준 작가는 “한 순수문학 프로작가로서는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명백한 작품 절도행위―표절”이라고 주장했다.

신경숙 작가와 연락두절상태라던 ㈜창비는 17일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신경숙 작가와 출판사 입장을 전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출판사 문의에 신경숙 작가는 이메일로 아래와 같은 입장을 보내왔다.

“오래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우국)은 알지 못한다. 이런 소란을 겪게 해 내 독자분들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풍파를 함께 해왔듯이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뿐이고,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

창비 문학출판부의 입장을 덧붙이기도 했다. “두 작품을 다 읽고 판단해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글을 열고 ‘전설’과 ‘우국’에 대한 간단한 작품 설명 후 “두 작품의 유사성을 비교하기 아주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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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AFP)

덧붙여 “인용 장면들은 두 작품 공히 전체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따라서 해당 장면의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표절시비에서 다투게 되는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이나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을 가지고 따지더라도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약하다”고 주장했다. 

법적으로 표절의 요건은 실질적 유사성의거성이다. 실질적 유사성은 전체 작품에서 주요한 내용이 유사한지 여부이며 의거성은 후행 저작자가 선행 저작자 작품을 접했는지다. 의거성은 그 입증이 어려워 통상적으로 발표시점으로 판단한다. 미사마 유키오 우국이 신경숙 작가의 전설보다 10여년 이상 앞서 출간됐으니 의거성은 이미 표절 요건을 충족시킨 셈이다.

두 문단을 비교·분석한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이재경 변호사는 “신경숙 ‘전설’의 분량이 더 많고 ‘우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창작 부분도 상당히 많다. 하지만 ‘우국’의 주요한 표현 내용이 ‘전설’에 사용한 표현과 무척 유사하고 전체적인 틀, 즉 여자를 육체적으로 길들여가는 과정이 동일하다”고 분석했다. 

덧붙여 “건강한 육체의 주인, 기쁨을 알게 된다 식의 표현이 고유한 것이라면 ‘전설’의 해당 부분에 대한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상덕 문화평론가는 “신경숙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작가다. 이번 사례는 그가 가진 문화 권력 앞에 전체 문학가들이 굴복한 것이다. 문학계 부패의 한 단면”이라고 문제제기하고 “소설가의 특권은 인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꼭 필요한 문장은 ‘대화체’로 인용할 수 있는데도 신경숙은 그걸 그대로 옮겨다 적었다”고 지적했다.

문제를 제기한 이응준 작가는 현빈·하지원의 SBS ‘시크릿가든속 단편소설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의 저자인 것이 밝혀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처럼 TV에 노출됐다 표절논란에 휩싸인 작품도 있다. 

예능 드라마 KBS2 ‘프로듀사’에서 극 중 백승찬(김수현)이 신디(아이유)에게 선물한 ‘데미안+수레바퀴 아래서 세트’(크눌프)다. 승찬과 신디의 마음을 ‘데미안’ 속 구절로 표현하며 주목받은 이 책은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한국출판인회의에서 11일 발표한 6월 둘째 주 종합베스트셀러 10위권에 진입했다. 이 책을 출간한 크눌프는 18일 저녁까지도 연락이 두절된 상태인 반면 문학동네와 민음사는 발빠르게 법적대응에 들어갔다. 

18일 문학동네 관계자는 브릿지경제와의 통화에서 “17일 고소장을 접수했다”고 전하고 “화제의 드라마에 노출돼 같은 판본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알아보다 저자 약력이 독문학 전공이 아닌 걸 보고 우리(문학동네) 책과 비교해 봤다. 민음사와 우리 판본을 고루 참고한 듯 보인다. 조사도 안바꾼 문장도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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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전경린 작가도 표절논란 대열에 합류했다. 2007년 발간한 ‘엄마의 집’이 2001년 HOT 출신의 강타 솔로앨범 ‘Plolaris’에 수록된 ‘나…세상…나 (I Will)-나의 이야기 두울’ 내레이션과 흡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신경숙 작가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문단의 표절문제가 수면 위로 불거졌다. 누군가는 이렇게라도 책에 관심을 가져주니 다행이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이럴 때만 주목 받는 출판계 현실에 좌절한다.

신경숙 작가 표절 문제 자체에 대한 의견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문학계 사람들은 단호하게 입을 모은다. “표절은 용납할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한 이응준 작가의 말마따나 “세상은 법률로만 유지되는 게 아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