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엘리엇 공격 국익차원 대응 절실하다

사설
입력일 2015-06-15 17:23 수정일 2015-06-15 18:04 발행일 2015-06-1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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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공격하는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탐욕적 본색(本色)이 드러나고 있다. 처음 삼성물산 정관을 변경해 이 회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등의 주식 현물 배당을 요구하면서 삼성전자까지 겨냥하고 잇따라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더니, 이제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비율 조정을 주장하고 나섰다.

엘리엇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비율 ‘1 대 0.35’를 ‘1 대 1.6’으로, 삼성물산 가치를 무려 5배나 높일 것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전자·SDS·제일기획 등의 지분가치가 낮게 평가됐다는 논리다. 당연히 수용될 수 없다. 이 합병비율은 삼성이 우리 자본시장법의 상장사 간 합병비율 산정 기준에 따라 주식 가격을 근거로 결정된 것이다. 엘리엇의 집요한 공격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은 소송으로 계속 이어질게 분명하다. 그것이 엘리엇 특유의 전술이다. 한국 간판 기업 삼성 마저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양상이다. 단기 차익을 노리고 ‘먹튀’하려는 예사스런 헤지펀드, 일반적 기업사냥꾼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이 사안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엘리엇이 위기에 처한 국가나 기업을 상대로 벌인 약탈적 행태의 악명(惡名)은 높다. 특히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때 가격이 폭락한 국채 4억달러 어치를 겨우 4800만달러에 사들여 10년 소송 끝에 아르헨티나를 디폴트 위기까지 몰아넣고 13억3000만달러를 받아낸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뿐이 아니다. 2011년 최빈국 콩고 국채를 2000만달러에 사들인 뒤 보상 요구가 먹히지 않자 국유자산 4억달러를 압류, 결국 9000만달러를 회수했다. 당시 콩고에는 콜레라가 창궐했지만, 빈곤국을 돕기 위한 국제지원금까지 엘리엇 보상금으로 충당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미국의 유명한 탐사보도 기자인 그레그 팰러스트는 “누가 아프리카에서 어린 아이들이 죽게 만들었는지 아는가”라며 엘리엇의 냉혹함을 비난했다.

엘리엇은 곤경에 빠진 기업들도 먹잇감으로 놓치지 않았다. 2005년 미국 오웬스코닝이 석면 공해로 사망한 일부 종업원들에 막대한 보상금을 지급해야할 처지에 놓이자, 이 회사를 사들인 뒤 보상금을 대폭 깎은 뒤 나중에 10억달러에 달하는 이익을 올렸다. 2009년에는 파산한 미국 델파이 채권을 달러당 20센트에 매입한 후 델파이가 GM 등 자동차 회사의 핵심 부품공급업체인 점을 악용해 회사 청산을 무기로 오바마 정부를 위협, 정부의 자동차산업 지원 펀드에서 12억9000만달러를 챙겼다. 합법의 허울만 썼을 뿐 최소한의 상도의도 찾아볼 수 없는, 위기를 틈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런 행태는 경제질서를 심각하게 교란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결국 엘리엇은 지금 삼성을 공격하는 단계이지만, 곧 한국 경제의 기반, 자본시장 시스템까지 흔들겠다는 본색을 드러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런데도 일각에선 우리 글로벌 기업 압축성장 과정의 태생적 한계인 지배구조 취약성을 탓하기만 한다. 삼성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대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나라 경제의 중대한 위협인데도 정부와 금융감독당국은 별 관심없이 허투루 보는 모습이다.

엘리엇의 공격으로 만에 하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무산된다면, 그야 말로 전세계 벌처펀드(vulture fund)들이 우리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허점을 노려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빌미가 될게 뻔하다. 국익 차원의 대응으로 국부 유출을 막는 것이 정말 중요한 때다. 벌처펀드 공격에 우리 글로벌 기업이 당하지 않는다는 힘과, 국제 투기꾼이 한국 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없음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