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롯이 배우… '화장' 김규리 "매순간 최선 다하고 싶어"

이희승 기자
입력일 2015-04-12 12:35 수정일 2015-04-13 09:10 발행일 2015-04-12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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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리
(사진제공=MBK엔터테인먼트)

이제 김규리(35)에게 모델 출신이란 수식어도, 과거 ‘김민선’이라는 이름도 떠오르지 않는다. 

오롯이 ‘배우’. 지난 9일 개봉한 영화 ‘화장’의 추은주는 복잡하고 고단한 인물이다. 

지극히 남성적인 시선이 강한 시나리오에서는 주변인물로, 현장에서는 미의 화신으로, 완성작에서는 갈등의 씨앗으로 버전이 전혀 달랐다. 숙제는 김규리의 몫이었다.

추은주는 순전히 김규리를 통해 손에 쥘 수 없는 욕망의 아이콘이자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속 캐릭터로 완성될 수 있었다.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어떤 영화든 비중이 중요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화장’의 감격은 남달랐어요. 감독님과의 첫 작품인 ‘하류인생(2004)’ 촬영을 엄마 탈상 다음날 시작했는데 긴장해서 팔이 안 움직이는 거예요. 연기는 오죽했겠어요. 그 현장에서 정말 많은 배려와 연기를 배웠죠. 임권택 감독님은 저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예요. 정말이지 감독님하고의 두번째 작품은 감히 욕심내지도, 할지도 몰랐어요.”

많이 알려졌다시피 ‘화장’ 캐스팅은 부산국제영화제 축하 공연에서 이뤄졌다. 당시 ‘댄싱 위드 더 스타’(이하 댄싱) MC로 주가를 올리고 있던 김규리가 물오른 춤사위를 펼쳐보였고 영화 속 캐릭터를 구상 중이던 임권택 감독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다.

극중 젊고 매력적인 추은주 캐릭터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선택이었다. 김규리의 표현 대로라면 감독 이하 모든 스태프들이 ‘어떻게 하면 (김규리를) 더 예쁘고, 아름답게 찍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감사함의 연속이었다. 극중 오상무(안성기)의 상상에서 드러나는 전라의 나신은 평범해서 더욱 처연하게 느껴진다.

“영화 시사 직후 반응이 ‘평소 너 답지 않게 예뻐 보인다’이 가장 많았어요. 저도 영화를 보면서 ‘나에게 저런 얼굴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죠. 그러니 얼마나 다들 열심히 찍어 주셨겠어요. 노출이요? 사실 배우로서 모든 연기는 쉽지 않아요. 솔직히 몸매는 2년 전 춤 출 때가 제일 예뻤죠. 순전히 조명으로만 완성된 신이에요. 충분히 자극적일 수 있는 영화를 어른의 지혜로 풀어준 ‘화장’이기에 노출도 감행했죠.”

화장 김규리
‘화장’의 오프닝과 더불어 몇차례 반복되는 꽃상여길. 영화의 제목과 묘하게 교차되는 명장면으로 김규리의 아름다움이 빛을 발한다. (사진제공=명필름)

김규리는 타고난 연기 능력 보다는 노력으로 상쇄시키는 배우다. 

10대 시절 보이시하고 건강한 이미지의 모델로 또래보다 많은 돈을 벌 때도 흥청망청 쓰기 보다는 카메라를 사서 독학하는 스타일이었다. 

찍히는 입장에서 프로가 되려면 잘 찍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다.

김규리 스스로가 ‘나의 영화’라고 표현하는 영화 ‘미인도(2008)’를 찍을 때는 동양화 수업에 빠져 평소에도 붓펜을 들고 다니며 틈만 나면 그림을 그렸다.

당시에는 카페에 있던 냅킨도, 시나리오 귀퉁이도 모두 사군자로 도배하다시피했다. 대한민국을 삼바와 차차차로 물들게 했던 ‘댄싱’은 도전자로 출연했다가 다음 시즌 MC까지 꿰찰 정도로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뭔가를 하고자 할 때 ‘얻는 걸 뭘까’를 고민하지 않아요. 심장이 뛰는 일에 올인하는 편이죠. 대충 살고 싶지도 않아요. 천성이 그래서 잃는 것도 많지만 이렇게 ‘화장’을 얻었잖아요. 제가 만약 누가 봐도 고생길이 뻔한 ‘댄싱’을 마다했다면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공연도 없었을 거고 이 영화의 캐스팅도 없었겠죠.”

춤 실력이 증명(?)된 이후 각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섭외가 작품 수를 앞질렀다. 흔히 연예인들이 표현하는 ‘물 들어 오는 때’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노를 저어야하는, 인기와 부가 증명된 탄탄대로에서 김규리의 선택은 아프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것이었다. 독한 황열병 주사를 맞고 검은 피부에 큰 눈망울을 한 굶주린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상이 영혼의 풍요로움으로 이어졌다.

“배우로서 대충 살고 잎지 않아요. 물론 ‘화장’이 잘 됐으면 좋겠지만 제 행복의 기준은 관객 수도 아니예요. 단지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배우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화장’은 완전한 조연이면서도 김규리 인생의 주연일 수 있었던 영화였어요. 무엇보다 VIP시사에 양조위가 온 거예요! 와…진짜 감동했어요. 무엇보다 저희 언니가 30년 팬인데 정말 좋아하더라구요. 좋은 배우이면서 주변 사람을 행복해 주는 존재로 언제나 남고 싶은데 이번에 제대로 한건 했죠.” 그의 웃음이 영락없이 추은주를 닮았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