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서울 투어] ⑬사색과 공감의 길 구로 '항동 철길'
문득 걷고 싶을 때가 있다. 바쁜 일상을 벗어나 사람이 없는 한적한 길을 걷는 상상을 한다. 도심에 조용한 곳은 없다. 산으로 가자니 식상하다. 그럴 때 찾으면 좋은 곳이 서울 구로구에 있는 '항동 철길'이다.
그야말로 걷기 좋은 길, 기차는 사라졌지만 철길은 여전히 남아 그 위를 지나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 철길은 사람이 적은 평일에는 사색의 길로, 주말에는 가족과 연인들의 나들이 장소로 인기다.
남자친구와 항동 철길로 데이트를 나온 정현진(26)씨는 "얇은 철로 위를 혼자 걸으면 얼마 못 가지만 남자친구의 손을 잡고 걸으면 더 멀리 걸어갈 수 있다"며 "누군가와 함께 걷는 기분이 좋다"고 웃는다.
◇‘멈춤’이 필요할 때가 있다
길이 4.5km의 항동 철길은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서 부천시 옥길동까지 이어져 있다. 이곳의 원래 명칭은 오류동선이다. 지난 1959년 경기화학공업주식회사가 원료와 생산물을 운반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당시에는 기차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곳을 지났지만 지금은 필요할 때 아주 가끔 기차가 이곳을 지나간다.
오류동 박상희 역장은 “일주일에 한두 번, 군부대로 들어가는 화물이 있을 때 기차를 운행한다”고 설명한다. 이어 “항동 철길을 지나는 기차는 멀리서부터 기적을 울리고, 아주 천천히 운행하기 때문에 시민이 다칠 위험은 없다”고 안심시킨다.
철길을 들어서는 건널목에는 한동안 불이 켜지지 않은 ‘멈춤’ 표지판이 방문객을 반긴다.
표지판을 지나 철길에 오르는 순간 복잡한 일상은 잠시 멈춘다. 몸을 감싸는 철길을 따라 그저 걸으면 된다. 철길 주위로 시원하게 뚫린 풍경은 방문객에게 네모난 PC와 스마트폰으로 지쳤던 눈에 휴식을 주고 넓게 펼쳐진 논과 밭은 옛 시골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철길 한쪽에는 폐품으로 만든 로봇조형물과 각종 장식품이 있다. 지난해 구로구청과 구로문화재단이 연계해 설치한 예술품으로 철길을 걷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기찻길 옆 ‘푸른 수목원’
항동 철길 입구를 지나 조금만 걸으면 ‘푸른 수목원’이 나타난다. 서울 광장 8배 규모의 수목원으로 다양한 나무와 화초를 무료로 구경할 수 있다.
그래서 주말에는 유독 가족 단위 관광객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 철길 위에 올라 장난을 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부모들은 수목원에 들어가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는다. 철길과 수목원이 선사하는 즐거운 추억이다. 항동 철길과 푸른 수목원은 평소 반려견과 나들이 장소를 고민하는 사람에게도 큰 인기다. 철길은 따로 반려견 출입을 통제하는 규정이 없고 수목원에서는 목줄만 제대로 착용하면 된다.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수목원의 긴 운영 시간도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 이유다.
글·사진 김동민 기자 7000-ja@viva100.com
◆어떻게 찾아가나요?
7호선 천왕역 2번 출구서 오류고가차로 쪽으로 200m 정도 걸어 가면 된다. 빌라와 아파트 사이에 놓인 철길을 따라 다시 200m 정도 걸으면 수평선 너머 시원한 풍경이 반긴다. 푸른 수목원은 철길 바로 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