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미야베 미유키의 맛있는 추리소설 '맏물 이야기'

김동민 기자
입력일 2015-02-27 09:00 수정일 2015-05-31 23:16 발행일 2015-02-2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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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화차'의 미야베 미유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 작가
'맏물 이야기'는 음식으로 푸는 추리 소설…9가지 음식, 9가지 사건
검판용 맏물이야기 표지
일본 추리소설의 여왕 ‘미야베 미유키’소설 ‘맏물이야기’가 지난 19일 출간됐다. (사진제공 =북스피어)

미야베 미유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다. 일본에서만 280만부가 팔린 소설 ‘모방범’을 비롯해 ‘솔로몬의 위증’, ‘낙원’ 등에서 범죄의 사회적 동기와 사건에 얽힌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독자들을 열광시켰다. 지난 2012년 개봉한 변영주 감독의 영화 ‘화차’의 동명 원작 역시 그의 작품이다.

‘맏물이야기’(북스피어 출판)는 미야베 미유키가 선보이는 맛있는 추리소설이다. 미야베 미유키에게 제13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신인상을 선사한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의 후속편이다. 맏물은 한 해의 맨 처음에 나는 과일, 푸성귀, 해산물 따위를 일컫는 말로 작가는 이 식자재들을 이용해 미궁에 빠진 사건을 푸는 단서를 제시한다.

소설은 9개 단편으로 이뤄져 있다. 각 편마다 완결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주인공 모시치와 유부노점 주인의 인연은 소설 내내 이어진다. 주인공 모시치는 범인을 체포하거나 물건 혹은 사람을 찾아주는 하급관리인 ‘오캇피키’다. 오늘날 서민 탐정을 뜻하는 용어로 소설의 배경이 되는 에도시대의 마을 치안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이야기는 행상을 다니던 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피해자를 살해한 유력한 용의자가 있지만 그에게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다. 답답해하던 모시치는 우연히 들른 노점에서 뭇국과 된장 수제비국을 먹다가 범인을 잡을 힌트를 얻는다.

그렇게 독립된 각 편마다 봄의 뱅어, 여름의 맏물 가다랭어, 가을의 감 등 계절별 식자재들과 후타타비야키(두부산적) 등 음식이 등장하며 모시치를 돕는 노점주인의 수수께끼를 이어간다.

이처럼 단편인 듯 장편 구조를 가진 덕에 이미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접했던 팬들은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평소 추리 소설에 머리 아파하던 사람들도 쉽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9개의 단편 중에는 특히 핏줄로 이어진 가족이 안고 있는 어둠을 파헤치는 사건이 많다. 유산을 둘러싼 갈등, 유아 학대, 연금 부정 수급을 위한 죽음 은폐 등 충격적인 사건들은 가족간 유대가 사라져가는 현대 사회를 꼭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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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가 배경이기에 소설에는 지금은 쓰이지 않는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일본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국내 독자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맏물이야기’는 페이지 하단이 아닌 용어 바로 옆에 주석을 붙여 문장을 읽는 방향 그대로 따라가면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독자에게 밀도 높은 몰입을 요구하는 추리 소설 특성상 시선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한 배려다.

‘맏물이야기’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작가가 직접 에도시대 서적들을 연구해 찾아낸 결과물이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리워하거나 애틋하고 안쓰럽게 느끼는 등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복잡한 감정을 자아낸다.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흉측하고 가슴 아픈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에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이나 복잡한 감정이 실려 있다. “독자가 ‘꽤 맛있어 보이네’하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한 작가의 후기가 의미심장에게 다가오는 이유다. 독자의 상상력과 식욕을 동시에 자극하는 ‘맏물이야기’의 가격은 1만4000원.

김동민 기자 7000-ja@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