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단 하나뿐인 글을 그리다… 정통 캘리그라피로의 안내 '캘리그라피 교과서'

김동민 기자
입력일 2015-02-13 09:00 수정일 2015-05-31 22:59 발행일 2015-02-1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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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좋은 글귀는 많지만 쉽사리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그것을 직접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 바탕화면에 저장하며 정을 주려 해도 어느 순간 그 감정이 무뎌진다. 직접 내가 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과 친해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직접 써보는 것이다. 글자 하나하나가 모여서 만들어질 결과물을 상상하며 스스로의 손을 거쳐 탄생한 문장은 어디에도 없는 본인의 것이다. 처음에는 좋은 글귀를 따라서 쓰고 다음은 스스로가 생각한 새로운 문장으로 나아간다. 자신의 필체가 묻은 글은 어디에도 없는 단 하나의 글이다. 요즘 사람들이 ‘캘리그라피’에 열광하는 이유다.

캘리그라피 교과서(큰)
책 속에는 국내 캘리그라피 1세대 이규복 작가가 직접 쓴 작품이 실려있다. (사진제공=이규복)

가슴을 적시고 눈을 즐겁게 하는 ‘자신만의 글’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을 위한 책 ‘캘리그라피 교과서’가 출간됐다. 책은 누구나 알지만 제대로는 모르는 캘리그라피의 역사와 이론부터 실천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최신 트렌드에 편승해 빠른 시간 안에 캘리그라피를 익히기 위한 기술을 강조한 책은 그동안 많이 출간됐다. 이 책의 특징은 그러한 실전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이사를 역임하고 17, 18대 대통령 취임식 슬로건 타이틀을 직접 쓴 저자 이규복은 “수준 높은 캘리그라피가 지속해서 생산되기 위해서는 탄탄한 이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책은 ‘캘리그라피의 역사’, ‘캘리그라피의 비평’ 등 캘리그라피의 좀 더 제대로 된 객관적 기준을 단계별로 제시한다. 딱딱한 내용이지만 그 속에 저자의 풍부한 경험과 사례가 섞이며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캘리그라피의 인기는 출판사뿐 아니라 문구업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어느 순간부터 펜촉이 직사각형으로 각진 캘리그라피 전용펜이 생겼고 색깔별로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이 펜으로 글을 쓰면 캘리그라피를 배우지 않은 초보자라도 얼추 비슷한 느낌을 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겨냥해 저자는 캘리그라피의 기초가 되는 ‘서예’와 ‘한글’에 대한 이해를 강조한다.

그는 “붓의 운용법과 서체에 대한 공부가 우선시되어야만 자신의 개성이 묻어나는 캘리그라피가 만들어진다”고 책에서 설명한다. 책에는 현장에서 즉각 활용하고 적용할 수 있는 조언도 적혀 있다. 하지만 저자는 독자가 꾸준히 캘리그라피를 익히고 작가로 나아가길 꿈꾼다면 기초부터 확실하게 다져 나가기를 거듭 강조한다.

캘리그라피를 우리말로 바꾸면 ‘손으로 그린 그림문자’라는 뜻이다. 국내 캘리그라피 역사는 이제 10년 남짓이다. 저자 이규복을 비롯해 여태명, 강병인, 이상현, 이일구, 김종건 작가는 국내에 캘리그라피를 알리고 전파한 1세대다. 그들은 여전히 작품 활동과 강연을 하며 한국적 캘리그라피를 지키려 애쓰고 있다.

책은 ‘어떻게 하면 캘리그라피를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선뜻 내주지 않는다. 대신 ‘무엇이 좋은 캘리그라피이고 어떻게 캘리그라피의 범위를 넓혀가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자신이 쓰는 모든 글은 어디에도 없는 캘리그라피가 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떳떳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되는 것은 화려한 필체가 아닌 마음가짐에 달렸다. 그 답은 책 속에 있다. 안그라픽스 출판. 2만 5000원.

브릿지경제 = 김동민 기자 7000-ja@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