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를 신은 마윈, 그에게 갑을은 없다… 사람이 있을 뿐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5-01-30 09:00 수정일 2015-01-30 09:00 발행일 2015-01-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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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1~24일 전세계 정재계 인사 2700여명이 모여 현안을 논의하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y Forum)에서 눈길을 끈 이는 단연 중국 알리바바(阿里巴巴)의 마윈(馬云) 회장이었다.

그리고 28일에는 창업 전문 대학교를 설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는가 하면 최경환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항저우(杭州) 소재의 알리바바 본사를 직접 방문한 과정에서 한국 콘텐츠 및 물류기업과 투자 논의 중임이 알려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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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 알리바바 회장(EPA=연합)

중국 중소기업 제품을 전세계 기업이 구매할 수 있도록 한 B2B(기업 대 기업) 전자상거래사이트 알리바바는 나스닥에 상장하자마자 세계 2위 인터넷기업으로 급부상했고 마윈 회장은 글로벌 부자 24위, 중국 최대 갑부에 등극했다. 창업 15년만의 일이다.

파격 행보를 거듭하는 마윈에 대한 저서는 한국에만 10권 이상이다.

하지만 마윈과 알리바바가 인정한 책은 단 한권, ‘운동화를 신은 마윈’(穿布鞋的馬云)뿐이다.

CCTV(중국중앙텔레비전) 프로듀서 겸 진행자 출신의 왕리펀(王利芬)과 경제주간지 ‘재경천하’ 주간 리샹(李翔)이 공저로 엮은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출간됐다.

책은 7개장에 27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88년 항저우 전자공업대학 영어강사시절부터 그는 남달랐다. 대학 측에서 몸이 달아 장기계약을 강행할 정도로 학생들이 강의실을 꽉 메웠고 웃음이 넘쳤다.

그리고 1992년 그는 하이보번역사(海博飜譯社)를 창업했다.

겨우 몇백 위안을 벌 뿐인 첫 창업부터 그는 시대를 앞서갔고 많은 이들과 함께였다. 하이보번역사는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마윈은 3년을 버텨냈다. 중국정부의 개혁·개방 붐을 타고 극소수지만 생겨나기 시작한 수요의 만족과 퇴직 교사 채용이라는 창업 목적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퇴직 영어교사들은 잉여인력이 돼 가는데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려는 작은 회사들은 통·번역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 두 영역을 이어줌으로써 사회문제를 해결했고 창업 3년만에 하이보번역사는 승승장구하기 시작해 2015년까지 항저우 최고 번역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첫 번째 창업은 알리바바의 근간이며 마윈 회장의 경영이념이자 철학이다.

마윈은 기업의 목표는 ‘수익 추구’라는 경영상식을 깨고 ‘사회문제 해결 및 부조리 척결’이라 주창한다. 소비자와 중소기업이 겪는 불편과 사회 부조리 속에서 수요가 생겨나고 그 수요를 만족시키며 버텨낼 의지가 있는 기업이라면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음을 여러 차례 입증하기도 했다. 사회문제 해결이 곧 수요이며 기업의 성장동력인 셈이다.

기업을 단기 속성으로 키우기보다는 다소 더디더라도 그들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조성에 애를 써야 한다고 부르짖으며 실천에 나선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직원 하나하나가 기업의 주인으로 주주명단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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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36.5

뉴욕 증시의 기업공개 당시 알리바바의 주주명단이 창업을 함께 했던 직원 모두의 이름으로 빼곡했던 것은 꽤 유명한 일화다.

소수의 창업주 일가에 주식이 쏠리는 여타의 기업들과 달리 시작부터 회사지분의 상당부분을 창업멤버들에게 나눠준 것이다.

이 같은 경영철학으로 마윈은 알리바바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고 스스로는 중국 최고 갑부로 자리매김했다.

갑의 횡포와 을의 비극이 극에 달한 승자독식 사회에서 중국 중소기업 물품을 유통하는 알리바바와 나눌 줄 아는 마윈이 주목받는 이유다.

책은 첫 창업부터 알리바바의 출범, 투자유치, 기업위기, 알리윈(阿里云, 스마트폰 운영체제) 개발, 타오바오(淘寶, 온라인 오픈마켓)·챠이냐오(菜鳥, 물류기업)·위어바오(餘額寶, 인터넷머니 마켓 펀드) 창업을 거쳐 미국 상장까지를 아우르는 27개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마윈의 남다른 경영철학을 입증하는 동시에 성공적인 창업 팁을 제공하기도 한다. 

창업 아이템 선정 및 방향, 동업자, 비전 확립, 투자유치 등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전략을 꼼꼼하게 짚어낸다.

한국어로 ‘운동화’라 번역된 ‘부셰’(布鞋)는 중국 전통 헝겊신으로 구두를 신은 기업가가 아닌 아무 때나 태극권을 할 수 있고 작은 키를 신경 쓰지 않는 본연의 모습을 비유한 말이다. 36.5 1만7000원.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