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쿠바 봉쇄정책 더이상 효과 없다"

권익도 기자
입력일 2014-12-18 15:31 수정일 2014-12-18 18:05 발행일 2014-12-1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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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년만에 국교 정상화 나선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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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17일(현지시간) 쿠바와 53년 만에 역사적인 국교 정상화에 나서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또 양국의 국교 정상화가 단순히 쿠바만이 아닌 북한 등 미국의 적성국들에 대한 외교정책의 대대적인 변화를 시사하는 것은 아닌지도 주목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특별 성명에서 “쿠바를 붕괴로 몰아가는 것은 미국의 국익에도 쿠바 국민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어떤 나라를 실패한 국가로 몰아붙이는 정책보다 개혁을 지지하고 독려하는 것이 더 낫다는 교훈을 어렵게 얻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동안 수행해 온 금수조치 철폐, 테러지원국 해제 검토, 쿠바 내 미 대사관 개설을 비롯한 외교관계 회복 등 다양한 내용의 새로운 대(對) 쿠바 정책을 발표했다.

양국의 외교관계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1961년부터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통해 공산화를 이룬 뒤 자국 내 미국 기업의 재산을 몰수하거나 국영화했다. 미국은 1961년 쿠바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이듬해부터는 금수조치를 취했다. 냉전 시대였던 당시 미국이 쿠바에 대해 이와 같이 강도 높은 조처를 한 것은 공산주의 확산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었다.

이후 미 행정부가 바뀔 때마다 쿠바 금수조치의 유지 및 해제에 대한 찬반 의견이 엇갈렸지만 쿠바에 대한 외교정책의 근본 틀은 바뀌지 않았었다. 1979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쿠바 여행금지 조치를 해제시켰으나 1982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다시 복원시켰다. 이어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에 다시 여행규제를 풀고 쿠바 내 위성TV와 이동통신 사업을 허용했으나 그 이외의 무역규제와 관련해서는 제한을 풀지 않았었다.

쿠바 당국이 2009년 미국개발원조청(USAID) 계약직원이었던 미국인 앨런 그로스를 간첩 혐의로 체포하면서 양국 관계는 오히려 더 악화됐다. 그러다 양측은 지난 1년 여간 그로스 석방을 위한 물밑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바로 이날 국교정상화라는 역사적인 합의를 도출해 냈다.

그러나 53년만의 관계 정상화가 단순히 그로스의 석방 때문이 아니라 양국 정상의 상호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능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은 쿠바에 대한 봉쇄 정책을 폄으로써 중남미 지역과 전 세계의 파트너 국가들로부터의 경제적 고립을 초래하게 됐다. 중남미 국가는 물론이고 유럽연합(EU)조차 쿠바와의 관계 개선에 본격적으로 나선 상황에서 더는 쿠바에 대한 봉쇄정책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쿠바도 1962년부터 계속된 고강도 금수조치로 경제 상황이 악화됐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절실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이날 전국 라디오방송으로 중계되는 특별 성명을 통해 “미국의 금수조치가 쿠바에 심각한 경제적 위기를 초래해왔다”며 “체제의 자주성과 국가 주권에 대한 편견이 없는 기반에서 미국과의 정상화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이날 그동안 대표적 적성국이었던 쿠바와 관계회복에 나섬에 따라 이란, 북한을 비롯한 나머지 적성국에 대한 미국의 외교정책 향배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북한과 이란과의 관계가 쿠바처럼 될 가능성은 미약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은 미국의 적성국이긴 하지만 핵무기 개발 여부를 비롯해 여러 면에서 쿠바와 다른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미 뉴욕타임스는 이날 쿠바가 미국의 블랙리스트에서 떠나면서 냉전의 흔적은 북한에서만 찾아볼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권익도 기자 bridgeuth@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