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 아팠지만 올핸 웃고 싶었다…

김동민 기자
입력일 2014-12-18 11:16 수정일 2014-12-18 18:42 발행일 2014-12-19 11면
인쇄아이콘
2014년 트렌드 '공감과 재미'
베스트셀러

100세 할아버지의 유쾌한 모험을 그린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열린책들)이 2014년 베스트셀러 1위(온라인 서점 YES24 제공)를 기록했다. 2013년 7월 책으로 처음 국내에 소개된 책은 기발한 상상력과 내용 전개로 독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잠시 주춤하던 인기는 올해 6월 동명 영화가 개봉하면서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최근 4년간 최다 판매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면 2012~2013년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 2011년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각각 1위다. 현대인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책 트렌드가 과거 ‘힐링과 위로’에서 ‘공감과 재미’로 바뀐 것이 올해 가장 큰 특징이다

2014121701010008996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사진제공=열린책들)
◇ KEYWORD 1. 출판도 결국 마케팅 싸움…‘미디어셀러’의 강세

2014년은 ‘미디어셀러’가 출판계를 지배했다.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비롯해 드라마의 성공으로 웹툰 ‘미생’(위즈덤하우스)은 한달 만에 100만 부가 팔리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올해 베스트셀러 3위를 기록한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은 인기 드라마에 노출시켜 성공한 사례다. 2009년 출간 이후 큰 반향이 없던 이 책은 SBS ‘별에서 온 그대’에서 주인공 도민준(김수현)이 읽는 소품으로 등장하며 판매량이 급증했다.

tvN ‘응급남녀’에 노출된 김웅현 작가의 ‘여덟 단어(북하우스)’도 드라마 방영기간에 잠깐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진입하기도 했다.

◇ KEYWORD 2. 잘못된 출판 시장을 바로잡는다? ‘도서정가제 개정안’

도서정가제 개정안이 실시된 후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지금까지 동네서점과 출판사는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추세다. 소비자의 우려와 달리 책값은 오히려 낮아졌다.

출판업계는 도서정가제 개정안의 영향력을 인정하면서도 좀 더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게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장동석 편집주간은 “지금의 개정안이 있기 전 출판계는 불완전한 가격체계가 형성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여러 문제가 발생해 왔다”며 “반값 할인 도서가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오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우선 책이 공평한 조건에서 판매되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어 “가격 경쟁을 떠나 콘텐츠 경쟁, 나아가 가치 경쟁으로 발전해야 한 단계 발전된 출판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2014121701010008993
<span style="font-weight: normal;">‘비밀의 정원’.(사진 제공=클)

◇ KEYWORD 3. 답답한 일상 속 행복을 위한 조그만 사치…안티스트레스 ‘컬러링북. 그리고 색연필’

대한민국 성인 독자들이 스트레스를 잊게 해주는 ‘비밀의 정원’에 빠져 들었다. ‘안티 스트레스’란 부제가 더 인상적인 이 책은 바로 스코틀랜드에 사는 일러스트레이터 조해너 배스포드가 쓴 ‘비밀의 정원’(클)이다. 숨겨진 정원을 펼치고 그 속에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하나씩 채워 나가면 복잡한 잡념은 사라진다.

‘비밀의 정원’이 인기를 끌자 국내 출판사들은 ‘아트 테라피 컬러링북’, ‘블링블링 일러스트 컬러링북’ 등 너도나도 비슷한 컬러링북을 출판하며 흐름에 동참했다.

컬러링북 인기에 대해 한빛라이프 박채령 실용팀 팀장은 “과거 어른을 위한 컬러링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만다라 패턴 등은 종교적 색깔이 강해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다. 하지만 ‘비밀의 정원’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꽃을 주제로 한 것이 성공요인”이라며 “취미활동이 부족한 어른들의 생활패턴과 우울한 경제적 상황이 잘 맞아서 인기를 얻었다”고 설명한다.

◇ KEYWORD 4. 40대 독자가 주요 도서 구매 계층으로…‘독서 고령화’

출판 시장에도 ‘고령화’ 바람이 불고 있다. 스마트폰 대중화로 젊은 사람들의 독서량은 과거보다 부쩍 줄었다. 이에 젊은 독자를 위한 콘텐츠 부족과 매년 꾸준히 성장하는 전자책의 활성화는 20~30대가 종이책을 멀리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온라인 서점 YES24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40대가 39.7%로 가장 높은 도서 구매율을 기록했다. 지난 15년간 제일 높은 구매율을 기록한 30대는 올해 전년(36.1%)보다 3.1%포인트 낮은 33%로 40대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다.

전자책 부문에서도 40대(32%)는 30대(36.4%) 다음으로 높은 구매율을 기록했다. 예문당 임용훈 대표는 “그들이 주로 전자책으로 구매하는 도서는 중년의 은밀한 판타지를 다룬 19금 로맨스 소설과 무협지”라고 전한다. 이들 소설이 주를 이루는 장르문학은 올해 전체 전자책 판매 점유율에서 57.9%를 차지했다.

◇ KEYWORD 5. 돈과 시간은 없지만 ‘여행’에 대한 낭만은 영원하다…‘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2014121701010008998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사진 제공=비룡소)<br>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 ‘낭만’은 ‘여행’이다. 올해 초 세월호 침몰사고가 생기고 전반적인 경제 불황 속에 실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수는 줄었지만 간접적인 경험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감성적인 문장과 사진으로 독자에게 여행의 대리만족을 성공적으로 전해준 책이 바로 문화평론가 정여울의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홍익출판사)이다. 책은 올해 종합 베스트셀러 6위다. 10위권 내 작품들 중 유일하게 2014년에 출간된 책이기도 하다.

출판을 담당한 홍익출판사 주소은씨는 책의 성공요인으로 ‘공감대 형성’을 꼽는다. 그는 “여행 책은 독자에게 아직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간접경험과 다녀온 곳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는 시간을 선물해 주는 매력이 있다”며 “이 책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인문학적 느낌이 강한 에세이 형식의 기획이 독자에게 잘 전달된 것 같다”고 밝힌다.

◇ 2015년 핵심 키워드는 ‘감동’

인터넷에 엄청난 양의 정보가 쌓여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책을 찾는다. 한 장씩 넘기는 아날로그적 감성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 새 책 속에 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한때는 ‘힐링’을 찾았고 올해는 ‘재미와 공감’을 찾았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는 그보다 한 차원 높은 단계인 ‘감동’을 2015년 핵심 키워드로 선정했다.

장동석 편집주관은 “고(高)스펙으로도 취업이 안 되는 시대, 따듯한 정을 그리워하는 ‘을’의 사회, 사람이 주는 따스함을 그리워하는 시대가 왔다. 우리보다 5~10년 앞선 일본도 개인주의 의식이 만연해지면서 ‘감동’ 코드가 각광받고 있다”며 “특정 장르가 아닌 다양한 장르에서 그 분야가 가진 특별한 방법으로 독자를 감동시킬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김동민 기자 7000-ja@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