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사이길'엔 예술이 있다

김동민 기자
입력일 2014-12-10 04:01 수정일 2014-12-11 15:00 발행일 2014-12-11 11면
인쇄아이콘
5

‘방배 사이길’. 이름부터 재미있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이 길은 큰 길 속에 숨은 ‘사이’라는 뜻이매 이곳의 정식 지명인 ‘방배로 42길’에서 이름을 따왔다. 1~2년 전 다양한 손재주를 가진 예술가들이 모여 개인 공방·갤러리·수입 인테리어 소품 가게 등이 문을 열면서 평범한 골목길은 지금의 방배 사이길이 됐다. 

커다란 안내지도를 따라 거리로 들어서면 차가운 겨울 날씨에 얼어붙은 감각을 깨우는 가게들이 반긴다. 잘 정비된 거리에 들어선 가게들은 소박하고 정갈하다. 투명한 창문 너머로 그들의 작업 과정을 지켜보면 소리가 들리고 냄새가 나고 촉감이 느껴지는 듯하다.
도자기를 칠하며 수다 떠는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 빵 굽는 고소한 냄새, 거친 나무를 멋진 가구로 만드는 망치질 소리…. 이 거리에서 이뤄지는 작업들은 빠르지는 않다. 하지만 여유있게 그 과정을 즐기는 멋이 있다. 
방배 사이길을 걷는 것은 늘 정해진 것만 찾는 결과 위주의 세상에서 특별한 나만의 과정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2014121001010004981
서울 서초구 ‘방배 사이길’에 있는 도자기 핸드페인팅 스튜디오 ‘세라워크’에서 9일 오후 주부 수강생들이 가마에 들어갈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수강생 김모(37)씨는 “그림을 그리다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일상에서 쓰는 소품을 만들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 청각=그들의 소리가 궁금하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아주머니들의 수다는 높고 유쾌하다. 거리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띠는 도자기 핸드페인팅 전문 스튜디오 ‘세라워크’의 소리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약속이라도 한 듯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던 수강생들이 입을 다문다. 그리고 이내 다시 시작되는 그들 이야기의 주제는 자녀 이야기, TV 속 사건·사고 소식 등 다양하기도 하다. 
‘꽝, 꽝, 꽝.’ 머릿속에서 들리는 망치질 소리를 따라 가면 달콤 쌉싸래한 나무 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가구 공방 ‘키논’은 마치 인테리어를 덜 마친 공간처럼 거칠고 투박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가구는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멋이 있다.
방배동사이길8
가구 공방 ‘키논’ 김정호 대표. 건축을 전공하고 호텔에서 일을 하다가 자신의 사업을 하기 위해 공방을 차렸다.매트리스만 깔고 기다리는 친구의 결혼 선물인 침대를 만들기 위해 얼마전부터 바쁘게 일을 하고 있다.<br>
‘키논’ 김정호 대표는 “설계를 하고 나무를 자르는 과정부터 조립까지 공정 과정마다 다 의미가 있다”며 “최근에는 가구를 만들어 선물하는 수강생이 늘었다”고 이야기한다.
방배동사이길
방배동 사이길 중간에 위치한 '향수공방'은 독특한 인테리어에 나만의 향을 만들 수 있는 독특함이 매력이다.
◇ 후각=뿌리치기 힘든 향기의 유혹
거리 중간에 위치한 ‘향수공방’은 인테리어부터 독특하다. 조그만 향수병들이 즐비한 창문 속 진열장 풍경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각종 향수 냄새를 떠올리게 한다. 이곳에선 150여가지 향료로 나만의 향을 만들 수 있다. 특히 연인에게 인기가 많은 이곳 수업은 1~2시간 과정으로 다른 공방에 비해 간편하게 결과물을 가져갈 수 있다.  
방배동사이길27
프랑스 빵 전문학교 출신의 셰프가 직접 베이킹 클래스를 운영하는 베이킹 스튜디오 '도나.리'는 오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특별 과정을 개설한다.<br>
문이 닫혀있어도 갓 구운 빵 냄새까지 막을 수는 없다. 프랑스 빵 전문학교 출신의 셰프가 전하는 비법을 따라 한 단계씩 나아가면 어느 새 달콤한 빵과 디저트가 완성된다. 현재 정기 베이킹 클래스를 운영 중인 베이킹 스튜디오 ‘도나.리’는 오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특별 과정을 개설해 수강생들과 연말을 준비하고 있다. 
방배동사이길4
가죽공방 ‘알라맹’에는 일상 속에서 특별한 재미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
◇ 촉각=계속 만지고 싶은 가죽의 매력
“한땀, 한땀. 가죽 공예는 내 것이 만들어지는 재미가 있어요. 가방이든 파우치든 어떤 형태든 그 결과물도 훌륭해요. 세월이 지나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가죽 공예의 매력이죠.” 
2014121001010004988
가죽 공방 ‘알라맹’ 이인수 대표가 소가죽으로 가방을 제단하고 있다. 수업은 초급, 중급, 고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개월 정도 배우면 간단한 가죽 케이스부터 가방까지 만들 수 있다.
가죽공방 ‘알라맹’ 이인수(65) 대표는 평소 손바느질을 오랫동안 해오다가 자신의 작업장을 차려 방배동으로 왔다. 그는 “바느질을 한 번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죽 공예를 할 수 있다”며 “일상 속에서 특별한 재미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배우러 온다”고 전한다. 
방배동사이길99
‘방배 사이길’에는 공방 외에 미술품이 전시된 갤러리와 각종 인테리어 소품 가게들도 있다.
◇ 시각=방배사이길의 원조를 즐긴다
‘방배 사이길’에는 공방 외에 미술품이 전시된 갤러리와 각종 인테리어 소품 가게들도 있다. 개인 미술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이 오면서 갤러리가 곳곳에 들었고 그 중 제일 유명한 곳이 ‘토스트’다. 
방배동사이길33
오는 13일까지 갤러리 ‘토스트’는 ‘Before Christmas’를 주제로 이희영 작가 개인전을 연다.<br>

 빵집 건물 3층에 위치한 토스트는 현재 ‘Before Christmas’를 주제로 이희영 작가의 개인전을 진행 중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선물의 의미를 담아 기획된 전시인 만큼 성탄절 온기로 충만한 특별한 분위기의 그림들이 오는 13일까지 관람객을 기다린다.  

방문 당일 안내를 담당한 백은하(28) 작가는 “토스트는 3년 전에 처음 만들어졌다. 이곳을 시작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찾으면서 방배 사이길이 조성됐다”고 설명한다. 
 ‘열심히 산다’는 사람은 많은데 ‘행복하다’고 하는 이는 드물다. 늘 남과 비교해야 하는 정해진 결과물에서 채울 수 없는 허전함만이 느껴지는 현실에서 느긋하게 과정을 돌아보는 시간은 꽤 행복하다.
김동민 기자 7000-ja@viva100.com
은밀한 서울 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