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칼럼] 예술의 '액션'이 갖는 의미

앤서니 올리버 스콧 미국 영화 평론가
입력일 2014-12-03 16:00 수정일 2014-12-03 16:00 발행일 2014-12-0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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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올리버 스콧 미국 영화 평론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나는 소설 ‘분노의 포도’를 집어 들었다. 이 책은 1929년 10월 뉴욕 월가의 증권시장이 붕괴되면서 당시 세계 경제에 찬물을 끼얹은 ‘대공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생의 터전을 잃은 톰 조드와 가족이 경제적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투쟁해나가는 모습은 당시 시대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거울 같다. 당시 나는 이외에도 ‘태양 속의 건포도’, ‘세일즈맨의 죽음’과 같은 과거 작품들을 다시 봤고 우디 거스리와 같은 가수들의 포크 음악을 들었다. 당대 가장 큰 고민들이 담겨있는 산물을 보며 얻은 통찰력으로 현 시대의 비슷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지금도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 현안들은 존재하고 있고 매순간에도 걱정스러운 일들과 부정의는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전 세계의 실업자들, 최저임금 문제, 중산층의 몰락 등 경제적 문제 뿐만 아니라 최근 인종 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킨 미 퍼거슨 사태와 같은 사회적 불평등 문제도 그렇다.

‘분노의 포도’가 그랬던 것처럼 생각의 힘을 바꿀 수 있는 예술이 대안이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예술은 온갖 불의와 세계적 문제들이 발생하는 순간에도 시대 문제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가끔은 우리가 취해야 할 액션까지도 넌지시 알려준다.

‘설국열차’와 같은 영화는 우리 시대 불평등의 축소판 같은 역할을 한다. 빙하기가 도래한 종말론적인 상황에서 지구를 제한 없이 도는 열차에 탄 생존자들은 그 안에서 위계서열에 따라 차별을 일삼는다. 비록 픽션이지만 자본주의 시대의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에 대한 통렬한 일침을 가하고 있다. ‘블랙키시’와 같은 미국 드라마는 또 어떤가. 인종 차별이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현 미국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부유하더라도 계속 차별을 받는 흑인들의 모순적인 상황을 묘사한다. 단순히 즐겁게 보고 그칠 것만 같은 영화 ‘페인 앤 게인’, ‘스프링 브레이커스’에도 물질주의와 자본주의의 양면 가치가 반영돼 있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보자. 나는 최근 예술가들이 실제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등 전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현실 문제에 실질적으로 끼치는 영향력을 알고 싶어 다양한 예술가들에게 설문지를 보냈다. 설문이란 방법이 다소 비과학적인 연구일 수는 있었겠지만 내 의도는 정치적 교착상태, 인종간의 갈등과 차별, 세계 경제 위기에서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어떤 예술이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관한 토론을 진보시키기 위함이었다.

예술의 사회적 책임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관용적인 토론 주제이기에 내 질문은 단순했고 새롭지 않았다. 그럼에도 현시대 최고의 극작가, 영화감독, 힙합 래퍼, 시인들, 소설작가들로부터 온 대답들은 이 시대의 구조적 문제와 긴급성을 다시 한 번 증언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대중들과 창작가들이 예술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해결하려는 작품들로 소통할 때마다 세계 변혁에 대한 대화들이 오가고 있었다. 이러한 예술가들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사고는 다른 예술가들과 독자들, 청중들 등 세계 곳곳에 전염병처럼 순식간에 퍼져나가 곪아있는 전 세계 문제를 바로잡고 불의에 정당하게 항거하는 행동으로 나아갈 거라 확신한다.

앤서니 올리버 스콧 미국 영화 평론가

정리=권익도 기자

※ 미국 영화 평론가 앤서니 올리버 스콧은 최근 예술이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감당해 내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