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금융실명제 강화 공감과 우려 사이

사설 기자
입력일 2014-11-26 16:00 수정일 2014-11-26 16:00 발행일 2014-11-2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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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 금융계좌를 사실상 완전히 금지하고 이를 어길 시 5년 이하 징역 등 형사처벌까지 받게 하는 강력한 개정 금융실명제가 시행예고 되면서 차명계좌나 가족 간 분산 계좌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폭증하고 있다. 20년 만에 단행된 이번 조치로 부자들의 뭉칫돈이 금융권에서 빠져나가 급속하게 장롱 속으로 이동하고 있다.

은행 예금에서 돈을 빼내 비과세 보험·금·미술품·현금 등 세금을 피할 수 있는 자산이나 금융상품으로 옮겨가는 추세가 완연하다. 이른바 ‘세(稅)테크’가 부자들 재테크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개정 실명거래법이 시행되면 예금이탈 현상이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한국은행의 지난 3분기 5만원권 환수율이 발행 첫 해인 2009년 이후 처음으로 10%대까지 떨어진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예전처럼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 상품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차명거래에 따른 골치 아픈 문제까지 생각하면 차라리 당분간 장롱 속에 보관하겠다는 자산가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1㎏당 5천만 원 가량인 골드바의 판매도 지난 1월 68㎏에서 지난달 132㎏까지 뛰어올랐다. 특히 4월 59㎏였던 판매량이 5월 94㎏으로 늘어나는 등 금융실명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5월부터 판매량이 급증하는 모습이다. 실버바도 지난 4월 470㎏이었던 판매량이 5월 740㎏으로 오르더니 지난달에는 1천㎏에 육박하는 980㎏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다른 사람 명의로 금융거래를 하던 사람이 줄었다는 긍정적 효과의 이면에 ‘증거’가 남는 금융거래를 아예 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불법 재산은닉·자금세탁·조세포탈·강제추심 회피 등을 목적으로 한 차명 금융거래를 원천봉쇄하겠다는 법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일시적으로 되레 지하경제를 활성화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단기적으로 지하로 숨는 자산가들이 더 늘어날 수 있는 여지가 많아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경제정의를 위한 운용의 묘를 발휘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