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칼럼] 왜 잘 놀아야 하는가?

영국 패션 작가·배우 로렌 라번 기자
입력일 2014-11-25 16:00 수정일 2014-11-25 16:00 발행일 2014-11-2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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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 라번 영국 패션 작가·배우

난 항상 잘 놀기를 좋아하고 장난기가 많은 부류의 사람이다. 몇 번 노력해봤지만 삶에 대해 심각하게 진지한 태도를 견지하는 ‘와일디안’(Wildean, 오스카 와일드 작품 ‘진지함의 중요성’을 따서 진지한 사람을 일컬음)은 절대로 될 수 없는 것 같다. 수녀원 학교를 한 번 가본 적이 있는데 내 인생 최대의 암흑기였다. 그땐 현실보다 음악에 의존했던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라디오헤드 콘서트에 시간을 내서 갈 수는 없었지만.

우리 모두는 탐험가들이다. 난 항상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삶을 추구한다. 비록 오늘날은 트위터가 우리를 다섯 척의 함선을 이끌고 신항로 개척 항해를 떠난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된 것 같은 환상을 불어넣어주기는 하지만 직접 두 발로 세상의 흥미로운 것들을 찾아다니는 즐거움이란. 그건 직접 경험해봐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놀기 좋아하고 장난기가 많은 태도는 단순히 즐겁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다. 적어도 좋은 정신 건강을 기를 수 있는 필수 영양 성분이라고 본다. 용어로 정의해보면 ‘놀이’는 ‘일’의 반대 개념으로 쓰인다. 그러나 실제로 현실세상에서 이는 완전히 잘못된 반의관계다. 미 캘리포니아대 스튜어트 브라운 박사는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라 우울증”이라며 “뇌 발달에 가장 좋은 방법도 놀이”라고 말한다.

언뜻 들으면 아이들에게 해당되는 소리인 것 같지만 성인에게도 놀이는 필요하다. 성인들이 현재 겪고 있는 고민이나 문제들은 부조리한 경우도 많고 복합적으로 얽혀 풀어내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 같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어쩌면 우리는 놀이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연구실이 아니라 목욕탕에서 휴식을 취하며 “유레카”를 외쳤던 것이나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놀이가 가장 높은 차원의 연구 형태”라고 말한 것을 생각해보라.

현대인들은 너무나 바쁘게 살고 있어서 많은 것들을 놓치기 쉽다. 우리 시대의 문화는 비즈니스 앞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고 놀이는 나태한 것으로 취급받는다. 누구보다 강인한 정신으로 경쟁의 레이스를 끝까지 완주해야 하는 세상 앞에서 놀다 보면 경쟁에서의 패배자로 나를 지켜볼 때도 있다. 그러나 놀이는 ‘레크리에이션(Recreation)’의 어원대로 지친 사람이나 생각을 다시(Re) 창조(Creation)하는 과정이다. 역사적으로도 인류의 진화 과정엔 항상 놀이가 있었다. 인류가 모여서 신나게 놀던 과정에서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잉태됐고 지금도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구글이나 버진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다양한 놀이를 장려하면서도 새롭고 파격적인 사업 아이템으로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지 않은가. 앞으론 역설적으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놀아야만 하는 세상이 올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로렌 라번 영국 패션 작가·배우

정리=권익도 기자 bridgeuth@viva100.com 

※ 패션 작가이자 배우 로렌 라번은 최근 영국 일간 가디언에 잘 놀아야만 하는 이유와 관련된 칼럼을 기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