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칼럼] '혼돈의 아름다움' 간직한 그 곳, 베를린

데이비드 치퍼필드 영국 건축가
입력일 2014-11-12 16:00 수정일 2014-11-12 16:00 발행일 2014-11-1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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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치퍼필드 영국 건축가

베토벤의 9번 교향곡 중 ‘환희의 송가’가 1989년 12월 25일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 울려 퍼졌다. ‘환희’가 쓰여 있어야 할 악보에는 ‘자유’가 쓰여 있었다. 오랜 세월 서베를린과 동베를린, 서독과 동독,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을 갈라놓았던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축하하기 위한 연주였다. 당시 서베를린은 몰려든 동·서베를린 시민들로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서베를린에서 자유를 만끽한 동베를린의 시민들은 동독과 서독의 차이가 단순히 경제적 차이만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그동안 자신들이 요구하던 개혁으로 변화를 추구하겠다는 생각은 크나큰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한다. 올해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5년째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균열의 파편은 쉽게 정리되지 않고 있다. 동독 출신자들은 서독 출신자에 비해 평균 소득과 연금이 낮아 불평등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통일 이후 10년 동안 집중적으로 성장한 이후 최근까지 동부 생산량은 침체기를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이 때문에 베를린이 점차 환상적인 도시로 진화해 가고 있다고 말한다면 과장일까. 사실 베를린 황궁을 복원하자는 ‘슈타트슐로스 베를린 이니셔티브’와 ‘베를린 신공항 건축 프로젝트’가 처음 논의 됐을 때 독일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확신하기 쉽지 않았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만든 독특한 건축물 역시 눈부신 미래의 시작점이 될지 순수시대의 완벽한 종말을 예고하는 일이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베를린에 사는 사람들까지 베를린이 특별히 아름다운 도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니 어떤 면에서 이 도시가 ‘환상의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었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답은 여기에 있다. 베를린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베를린이 더 나아 보일지 알고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머지 너저분하면서도 관능적인, 숨죽여 몰입한 듯 하면서도 격렬히 약동하는, 모순적이면서도 일관적인 도시 특유의 광채를 만들어냈다. 풍부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베를린이 문화 향유의 최고 도시가 됐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 시민들은 고급 예술로 평가받는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등을 식후 커피 한잔 하듯 즐기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공짜로 박물관을 드나든다. 도시가 상업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 도시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는 또 한가지 이유가 된다. 과거의 균열을 메꿔 나간다는 것이 이토록 매혹적일 줄 누가 예상했을까. 절대적인 아름다움보다는 혼돈의 아름다움이 산재하는 곳. 분단과 이별의 아픔에서 오는 트라우마로 생생한 생명력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 쓰는 곳. 무척이나 임의적이고 규칙적이지 않은, 거침없는 파도처럼 강렬했던 근현대사가 펼쳐진 곳. 바로 베를린이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듯 현재의 베를린이 이토록 낭만적인 도시로 변하리라 짐작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데이비드 치퍼필드 영국 건축가

※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최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베를린이 깜짝 놀랄만큼 환상적인 도시가 된 이유를 짚어보는 내용에 관한 칼럼을 기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