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인 칼럼] 사람 찌르는 돈

김영인 논설위원 기자
입력일 2014-11-04 16:00 수정일 2014-11-04 16:00 발행일 2014-11-04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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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인-논설위원
김영인 논설위원

‘아편=돈’이었던 적이 있었다. 우리 땅을 강제로 점령한 일본이 관리들의 지방 출장비로 아편을 지급한 것이다. 조선 사람들을 중독자로 만드는 한편 아편의 판매도 늘리려는 얄팍한 꼼수였다. ‘무서운 돈’이었다. 

‘살벌한 돈’도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자 사람들이 서부로 몰렸다. ‘골드러시’였다. 금을 빼앗으려는 무법자들이 총을 들고 설쳤다. 금을 지키려는 사람들도 방어용 총이 필요했다. 너도나도 총을 차고 다니게 되었다.

이 무법지대에서는 ‘총알=돈’이었다. 당시에는 50센트 돈이 최저 단위의 화폐였다고 한다. 이 보다 가격이 낮은 상품을 거래할 때는 거스름돈을 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술집이나 상점은 총알을 준비했다가 거스름돈으로 내주었다. 물론 거스름돈으로 받은 총알로 총질도 했을 것이다.

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불과 13살 때’ 총을 선물로 받았던 기록도 있다. 이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미국에서는 걸핏하면 학생들까지 총을 휘두르는 ‘총기난사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도 무기를 돈으로 사용하려 했던 ‘과거사’가 있기는 했다. 조선 세조 임금 때 발행된 ‘팔방통보(八方通寶)’는 화살촉 모양으로 만든 ‘전폐(箭幣)’였다. 유사시에 무기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렇지만 유통시키는 데는 실패했다고 한다.

돈(錢)이라는 글자는 창(戈)을 두 자루나 가지고 있다. 전쟁터에도 대충 한 자루만 들고 출전하는 것이 창이다. 돈에는 그런 창이 두 자루나 달려 있다. 사람을 ‘곱빼기’로 찌르는 게 돈이다.

이 ‘무서운 돈’이 잊을만하면 사람을 찌르고 있다. 인천에서 일가족 3명이 연탄가스를 마시고 목숨을 끊은 것이다. ‘마이너스 통장’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었다.

돈은 나이도 따지지 않고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생인 어린 딸은 “우리 가족은 영원히 함께 할 것이기에 슬프지 않다”는 애끓는 유서를 남기고 있었다.

늙은이도 창을 비켜가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 장안동에서는 60대 ‘독거노인’이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고 있었다. 세 들어 살던 집이 다른 사람에게 팔리는 바람에 집을 비워줘야 하는 처지를 비관하고 있었다는 보도다.

잘못이 있다면 ‘가난’뿐인 사람들이었다. 몇 달 전 세상을 안타깝게 했던 ‘서울 석촌동 모녀’도 가난이 유일한 잘못이었다. ‘무전유죄(無錢有罪)’였다.

김영인 논설위원 kimyi@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