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인 칼럼] '좋은 꿈, 나쁜 꿈'

김영인 논설위원 기자
입력일 2014-11-02 16:00 수정일 2014-11-02 16:00 발행일 2014-10-31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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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인 논설위원

옛날, 주(周)나라의 어떤 갑부 밑에 늙은 하인이 있었다. 하인은 늙은 나이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에 쫓겼다. 밤이 되면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꿈을 꿨다. 그 꿈이 언제나 똑같았다. 임금이 되는 꿈이었다.

하인은 매일 밤 임금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고, 잔치를 벌였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했다. 그 즐거움은 비할 데가 없었다.

꿈꾸는 것만큼은 자유였다. 꿈에 대해서는 꾸지 말라고 금지령을 내릴 수도 없고, 법으로 규제할 수도 없었다. 덕분에 하인은 하루의 절반은 임금, 나머지 절반은 일꾼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꿈이 없었더라면 고달픈 일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인의 상전인 갑부도 세상 일, 집안 일 때문에 피곤해서 밤이 되면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매일같이 꿈을 꿨다. 그 꿈이 언제나 똑같았다. 하인이 되는 꿈이었다.

갑부는 꿈에 구박받고 매 맞지 않는 때가 없었다. 그 바람에 잠꼬대를 하고 끙끙거리다가 깨곤 했다. 그렇게 잠을 설치다 보니 낮에도 기운이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더 행복했을까. ‘열자’에 나오는 얘기다.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꿈 중에서 ‘용꿈’을 최고로 친다. ‘돼지꿈’이 그 다음이다.

용꿈은 출세, 돼지꿈은 재산을 상징한다. 돼지 돈(豚)이 ‘돈(錢)’과 같은 발음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그래서 돼지꿈을 꾸면 ‘대박’이 터질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달려가서 ‘로또’를 산다.

하지만 돼지꿈도 꿈 나름이다. 돼지를 집안으로 끌고 들어와야 좋은 꿈이다. 끌어들이려고 대문 앞에서 돼지와 실랑이를 하다가 꿈을 깨면, ‘도로아미타불’이다. 꾸나마나한 꿈이 된다. 꿈에는 이렇게 좋은 꿈과 나쁜 꿈이 있다.

그런데, 꿈에는 조건도 있을 수 있다. 최소한 다리를 뻗고 편하게 누울 자리는 있어야 좋을 꿈도 가능할 수 있다. 이른바 ‘햄버거 난민’이나, 중국의 ‘맨홀족(井底人)’이 좋은 꿈을 꾸기는 아마도 쉽지 않다. 불편하게 쪼그린 채 새우잠을 자면서 꾸는 꿈은 악몽이 되기 십상일 것이다.

형편이 좀 나은 ‘전세 난민’도 좋은 꿈을 기대하기는 껄끄럽다. 치솟는 전셋값 부담 때문에 이삿짐 꾸릴 걱정들이다. 잠자리가 편할 재간이 없다. 정부가 ‘서민 주거비 부담 완화 대책’이라는 것을 내놓아도, 입이 튀어나올 뿐이다. 전세살이가 서글픈데 월세를 얻으라는 대책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김영인 논설위원 kimyi@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