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인 칼럼] '쥐 재판'

김영인 논설위원 기자
입력일 2014-10-30 16:00 수정일 2014-10-30 16:00 발행일 2014-10-30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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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인 논설위원

늙고 교활한 쥐가 나라의 창고에서 곡식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창고 귀신에게 발각되었다. 재판을 받게 되었다.

쥐는 오리발부터 내밀었다. 다른 짐승의 소행이라고 우겼다. 쥐가 죄를 덮어씌운 짐승은 고양이 개 족제비 두더지 여우 코끼리 기린 사자 용 등 80여 마리에 달했다.

창고 귀신은 이들을 차례대로 소환, 조사했다. 소환 당한 짐승들은 당연히 억울하다며 죄를 부정했다.

80여 마리를 조사했지만 모두 깨끗한 것으로 드러났다. 창고 귀신은 노발대발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어도 살아남기 어려울 텐데, 오리발을 내밀었으니 ‘괘씸죄’까지 추가되었다. 사형선고를 내렸다.

다급해진 쥐가 한마디만 하겠다고 요청했다. 이를테면 ‘최후진술’이었다.

“세상만물은 모두 천제(天帝)가 만든 것입니다. 창고에 있는 곡식 역시 천제가 만든 것입니다. 나는 천제가 뭇 짐승을 위해 만들어준 곡식을 먹었을 뿐입니다. 아무 죄도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오리발이었던 것이다. 창고 귀신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천제가 경황이 없다보니 너처럼 사악한 짐승을 만든 것 같구나. 그 바람에 네가 세상에 폐를 끼치게 되었으니, 천제 또한 책임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쥐는 ‘혹시나’ 했다. 천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했으니 요행히 풀려나지 않을까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창고 귀신의 이어지는 말은 절망적이었다.

“그렇다고 천제까지 끌어들여 자기 죄를 벗어나려는 짓은 용서할 수 없다.”

조선 때 선비 임제(林悌 ? 1549∼1587)가 쓴 ‘서옥설(鼠獄說)’에 나오는 얘기다. ‘쥐 재판’이라는 뜻이다. 임제는 글을 끝내면서 한탄했다.

“이처럼 교활하고 흉악한 성질을 가진 자가 어찌 창고를 좀먹는 쥐뿐일까.”

오늘날에는 혼 좀 나야 될 사람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 이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줘서 가장 쥐를 많이 닮은 사람부터 법정에 세우면 어떨까 싶어지는 것이다. 그 순서는 독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따져볼 일이다.

‘0순위’를 꼽자면 ‘방산 비리’와 관련된 사람일 것이다. 나라를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시정연설에서 “안보의 누수를 가져오는 이적행위로 규정하고 일벌백계 차원에서 척결해 그 뿌리를 뽑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김영인 논설위원

kimyi@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