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인 칼럼] 황당한 로빈슨 크루소

김영인 논설위원 기자
입력일 2014-10-21 16:00 수정일 2014-10-21 16:00 발행일 2014-10-21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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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인 논설위원

영국 작가 대니얼 디포(1660~1731)의 작품 ‘로빈슨 크루소’에 나오는 얘기다.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바라보니 아득한 곳에 육지가 있었다. 섬 같기도 하고 대륙 같기도 했다. 거리는 40마일쯤으로 보였다.

바다를 건너려면 큰 보트가 필요했다. 로빈슨 크루소는 커다란 삼나무 한 그루를 찾아서 찍어 넘어뜨렸다. 밑동 지름이 ‘5피트 10인치’, 중간 부분의 지름은 ‘4피트 11인치’나 되는 나무였다. 솔로몬 임금이 예루살렘 궁전을 지을 때나 썼음직한 거목이었다.

작업도구는 도끼가 고작이었다. 나무를 쓰러뜨리는 데에만 20일, 크고 작은 가지를 쳐내는 데 14일, 나무를 배 밑창처럼 다듬는 데 1개월, 그 나무 안을 파서 보트 모양을 만드는 데 자그마치 3개월이나 걸렸다. 5개월 넘게 소요된 것이다.

완성된 보트는 그럴 듯했다. 26명을 태울 수 있을 만큼 컸다. 그러나 문제였다. 보트를 바다까지 옮길 재간이 없었다. 바다까지의 거리는 100야드 남짓했지만, 혼자서 옮기기에는 무리였다. 아무리 밀고 당겨도 움직이지 않았다.

땅을 파서 미끄럼 길을 만들어보려고 시도했지만 헛고생이었다. 운하를 뚫어서 보트까지 바닷물을 끌어들이는 방법도 궁리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10∼12년이나 걸릴 것 같았다. ‘의욕 과잉’이었다. 황당했다.

로빈슨 크루소는 풀이 죽었다. 그래도 무인도를 탈출해야 했다. 이번에는 작은 보트를 만들기로 했다. 힘든 작업을 되풀이한 끝에 어렵게 보트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그렇지만 보트가 너무 작았다. 로빈슨 크루소는 그 작은 보트를 타고 자기가 있는 무인도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나마 높은 파도 때문에 섬 반대편에 보트를 버리고 ‘도보’로 돌아와야 했다. 보트는 또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로빈슨 크루소는 ‘달력’도 만들었다. 커다란 기둥을 세워놓고 매일같이 칼로 눈금을 새겨 넣는 달력이었다. 요일을 구별하기 위해 눈금의 길이를 7일마다 두 배로 키웠다. 그리고 매달 1일에는 눈금을 또 두 배로 늘려 달이 바뀌는 것도 표시했다. 그것마저 날짜가 틀리고 있었다.

이렇게 열심히 만들고 다듬고 고쳐도 되는 일이 없었다. 마치 어떤 나라의 정책과 닮고 있었다. 안전 대책인지 매뉴얼인지는 넘쳐도 사고가 여전한 것을 보면 그랬다.

김영인 논설위원 kimyi@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