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앗간·철물점·돗자리 음악회…서울서 느끼는 '정이 있는 장터'

김동민 기자
입력일 2014-10-18 01:58 수정일 2014-10-19 20:43 발행일 2014-10-2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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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한국에 온 것 같아요.”

지나가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동시에 멈췄다.

지난 주 영국에서 온 제임스(34)는 “그동안 서울 여러곳을 다녔지만 이렇게 한국인의 삶이 느껴지는 곳은 처음”이라며 웃어 보인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 둘러본 이곳, 서울 종로구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구 금천교 시장)다. 도심 속 숨겨진 전통 장터에서는 ‘돗자리 음악회’가 한창이었다.

지역예술인들과 주민이 한데 모여 꾸미는 주민자치프로그램 행사다.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들 뜰대로 들 뜬 동네 어른들과 아이들이 시장 골목이 떠나가라 웃는다.

평균연령 60세의 동네 어른들이 직접 북과 장구를 두드리고, 새타령을 부르는 할머니들은 옷장 속 고이 간직하던 한복을 꺼내 입었다. 무대 아래 흥에 겨운 주민들은 쉬지 않고 박수를 치고 몸을 흔든다. 시장 상인과 마을주민, 그리고 관광객들이 함께 어우러진 음악회는 진짜 제대로 된 축제의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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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아직 ‘금천교 시장’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하다. 서촌 끝자락 경복궁 옆에 위치한 시장은 3~4년 전만 해도 관광지라기 보다는 방앗간, 철물점, 한옥집 등 과거 서민의 삶이 그대로 보존된 역사적 장소였다.

최근 국내외 젊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피자, 카페, 감자튀김, 치킨, 와플 등 세련된 메뉴와 인터리어로 무장한 상점이 군데군데 들어섰다. 금천교 시장이 지켜온 전통에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의 현대적 감성이 합쳐진 것이다. 올해로 2년째,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로 변신한 금천교 시장은 다양한 연령대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광화문 주변에서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은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를 이루는 주요 방문객이다. 그 중 하루 일을 마치고 동료와 막걸리를 마시던 피맛골의 추억을 기억하는 40~60대 중·장년층은 이곳을 찾는 단골 방문객이다. 광화문에서 15년 넘게 직장을 다니는 김우영(45)씨는 “젊은 시절 추억을 달랠 피맛골이 사라져 아쉬웠다”며 “다행히 이곳은 전통 술집이 그대로 장사를 하고 있어서 또래 친구, 혹은 직장 동료들과 자주 찾는다”고 말한다.

피맛골은 과거 하급 관리나 서민들이 다녔던 길로 서민들을 위한 저렴한 주점과 음식점들을 중심으로 상권이 크게 형성된 곳이었다. 원래는 종로 1~6가까지 이어져 있었으나 2009년 도심 재개발로 사라졌다. 현재는 종로 1가와 3가 사이에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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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교 시장에 정식 상인회가 생기고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로 상점가 등록을 한 배경에는 상인들의 끈끈한 ‘정’이 있었다. 20년 넘게 족발 가게를 운영 중인 윤경자(47) 씨는 “이곳은 서울에서 시골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동네”라고 전한다. 이어 그는 “우리 시장을 사람들이 더 많이 찾고 좋아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당시 상인들이 한 마음으로 뭉쳤다”고 설명한다.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따스함은 잊혀져 가는 전통 시장의 매력이다. 고소한 향기를 풍기며 30년 이상 참기름을 짜는 방앗간부터 ‘열정’을 외치며 즐겁게 장사를 하는 감자튀김가게까지 세월이 지나고 이름이 바뀌었지만 시장의 따스함은 변함이 없다.

글·사진=김동민 기자 bridgenews@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