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인 칼럼] '김정은 지팡이'

김영인 논설위원 기자
입력일 2014-10-16 16:00 수정일 2014-10-16 16:00 발행일 2014-10-16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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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인-논설위원
김영인 논설위원
고려 때 식영암(息影庵)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어느 날 꼭두새벽에 누군가가 스님을 불쑥 찾아왔다. 눈을 비비며 내다보니 낯선 손님이었다.

손님은 몸이 가늘고 키가 컸다. 피부는 검었다. 머리는 소뿔처럼 뾰족했다. 눈망울이 튀어나와 마치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마디로 희한한 외모였다.

손님이 자신을 소개했다.

“내 몸은 위가 가로로 되어 있고, 아래는 세로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을 정(丁)이라고 합니다. 나의 직책은 사람을 붙들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무척 고달픈 직책입니다. 그렇지만 진심으로 붙들고 모시는 사람은 몇 명되지 않습니다.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싶어서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손님의 됨됨이를 뜯어봤다.

“그대는 몸에 뿔이 있으니 씩씩함(壯)이다. 눈망울이 튀어나왔으니 용맹함(勇)이다. 피부가 옻칠한 것처럼 검은 것이 마치 진나라의 예양(豫讓) 같으니 믿음(信)과 의리(義)가 있다. 말을 제대로 잘 하니 지혜(智)도 갖추고 있다.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하니 어질고(仁) 예의(禮)가 있다. 의지할 곳을 찾으니 바르고(正) 밝기도(明)하다.”

스님은 이렇게 평가하면서 손님에게 말했다.

“그대는 이처럼 여러 가지를 두루 갖추고 있다. 따라서 나는 그대의 스승이 될 자격이 없다. 다른 스님을 소개해줄 테니 그곳으로 가도록 하라.”

식영암 스님은 손님과 만났던 사실을 ‘정시자전(丁侍者傳)’이라는 글로 남겼다. ‘정시자’는 지팡이라는 뜻이다.

암자에서 생활하는 스님에게 지팡이는 꼭 필요하다. 어쩌면 필수품이다. 지팡이는 지친 몸을 의지할 수 있다. 길을 갈 때 돌이나 덤불 등 장애물이 나타나면 툭툭 치우면서 다닐 수도 있다. 야간에는 지팡이로 땅바닥을 두드리면서 다니면 산짐승의 습격을 방지할 수 있다. 그 두드리는 소리가 껄끄러워서 사람을 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팡이는 또 다른 용도도 있었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팡이를 짚은 모습을 40일 만에 본 북쪽 주민들이 충격을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것도 ‘문화적인 충격’이라고 했다. 통치자의 지팡이는 충격을 주는 데에도 유용한 듯싶었다. 지팡이의 이런 용도는 어쩌면 ‘예찬론’을 편 식영암 스님도 몰랐을 것이다.

김영인 논설위원 kimyi@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