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인하만으론 한계…"한국형 양적완화 필요"

김지호 기자
입력일 2014-10-13 19:29 수정일 2014-10-13 20:05 발행일 2014-10-14 1면
인쇄아이콘
경기부양·재정건전화에 긍정적…통화정책 변화 필요
원화가치 하락에 외인자금 유출 우려도
14일-1면그래프1
저물가와 저성장으로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우려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기준금리 인하 외 시중에 추가적으로 돈을 푸는 한국판 양적완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양적완화란 기준금리가 충분히 낮은 수준임에도 경기부양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 중앙은행이 국채매입 등을 통해 유동성을 시중에 직접 푸는 정책을 뜻한다.

13일 안기태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양적완화는 경기부양 효과 외에 재정건전화에도 간접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정책당국이 유동성 공급 등을 통해 물가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한국판 양적완화 논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안 연구원은 한국형 양적완화 정책으로 △부동산 경기부양을 위해 한시적으로 주택담보증권(MBS) 무제한 매입 △지급준비율 인하 △공개시장조작 등의 방법이 거론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손성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석좌교수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워싱턴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국이 앞으로 5~10년간 저성장 국면을 벗어나기 힘들어 한국판 양적완화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손 교수는 “한국의 경쟁국은 중국이나 일본인데,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실상 양적완화를 하고 있었고 일본도 하고 있다”며 한국판 양적완화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오정근 건국대학교 특임교수 역시 “기준금리 인하만으로 경기를 부양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한국판 양적완화 정책이 필요하다”며 “전세계적 장기 디플레이션 우려에서 벗어나려면 과거와는 다른 통화정책이 필요하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

양적완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은 그만큼 경기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는 23개월째 상승률 2%를 밑돌고 있다. 지난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1%로 지난 2월 1.0%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상승폭을 기록했다. 이는 한국은행의 물가 안정 목표(2.3~3.5%)에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8월 광공업생산은 금융위기 이후 5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낙폭(3.8%)을 기록하는 등 사실상 저성장·저물가가 고착화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 같은 디플레이션 우려를 양적완화로 걷어낼 수 있다는 것.

실제 일본은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양적완화를 실시하는 동안 국내총생산(GDP)대비 재정적자비율은 6%에서 2%로 축소됐고 기업 파산건수도 감소했다. 양적완화로 디플레이션 우려가 줄면서 기업 투자가 늘고 가계 소비도 확대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한국판 양적완화가 세율 인상 없이 정부의 세수확대에도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다. 안 연구원은 “세율을 높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물가상승률을 높이면 그만큼 세금이 많이 걷히게 된다”며 “디플레이션이 우려될 때는 우선 물가를 올려야 체감 경기둔화를 막고 정부의 세수를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한국판 양적완화 논의는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의 약세를 불러올 수 있다는 반박도 나온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상무는 “원화가 기축통화가 아닌 상황에서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한다면 원화가치가 지나치게 떨어져 채권시장 등 외국인 자금 유출이 우려된다”며 “한국은 일본이나 미국과 같이 경제에서 내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높지 않아 효과에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오 특임교수는 “그건 너무 한가지만 보는 것이다. 지금 국내에서 돈이 안 돌고 있다”며 “기준금리가 제로 금리가 아닌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양적완화) 병행이 가능하다”며 양적완화 시행을 촉구했다.

김지호 기자 better502@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