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인칼럼] ‘의’ 발음이 어렵다?

김영인 논설위원 기자
입력일 2014-10-07 16:00 수정일 2014-10-07 16:00 발행일 2014-10-07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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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인 논설위원

우리말 ‘의’를 러시아에서는 ‘bI’라고 쓴다. 러시아 사람도 ‘의’ 발음을 할 줄 아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사람은 이 발음을 어려워한다. 미국 사람이 러시아어를 배울 때 가장 쩔쩔매는 게 이 발음이다. 미국의 러시아어 교본은 이 ‘쉽고도 간단한’ 발음을 무려 1∼2쪽에 걸쳐서 장황하게 풀이하고 있다고 한다. 

‘의’ 발음은 중국 사람도, 일본 사람도 헤맨다. 중국 사람이 발음할 수 있는 음절은 411개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성(四聲)’까지 동원해 숫자를 늘리고 있다. 그래봐야 기껏 1644개로 늘어날 뿐이다. 이 정도를 가지고 5만 개 넘는 한자를 발음하다 보니 겹치는 말이 수십 개, 수백 개다. 일본 사람도 다르지 않다. ‘가짜 글’이고 ‘임시 글’인 ‘가나(假名)’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발음은 제한적이다.

우리나라 사람도 일부 지역에서 이 발음을 조금 껄끄러워하는 경우는 있다. 그래도 대체로 무난하게 발음할 수 있다.

러시아 사람은 ‘의’ 발음을 하면서도 표현만큼은 알파벳을 빌려다가 ‘bI’라는 글자를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랑스러운 한글로 ‘의’라고 쓰고 있다. 한글이 알파벳보다 우수하다는 증거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의’ 발음뿐 아니다. 우리 한글은 세계 어떤 나라의 언어도 원음 가깝게 옮겨서 적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외국어를 대단히 잘 쓰고 있다. 대통령부터 ‘외국어 연설’을 유창하게 하고 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류’ 가수는 영어가 섞인 ‘K팝’을 열창하고 있다.

정부 정책은 ‘무슨 프로세스, 로드 맵’이다. ‘프로젝트, 태스크포스, 클러스터, 글로벌 스탠더드, 컨센서스’다. “반미면 어떠냐”고 반문했던 과거 정권도 정책에 영어를 섞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닭고기를 먹지 않고 있다. ‘치킨’을 냠냠하고 있다. 날개가 아닌 ‘핫윙’을 찾고 있다. 국수를 버리고 ‘파스타’를 즐기고 있다. 전문가라는 사람은 올리브기름도 올리브유도 아닌 ‘올리브 오일’을 강조하고 있다.

고속철도라는 말은 쑥 들어가고 ‘KTX’다. ‘실크로드 익스프레스’를 잇겠다고 하고 있다. 원음을 놓고 나라가 떠들썩하기도 했다. ‘오렌지’가 ‘어뤤지’냐, ‘아륀지’냐 하는 논란이었다. 그러면서도 여론조사는 대한민국 국민이 ‘한글날’도 잘 모른다며 걱정하고 있다.

김영인 논설위원 kimyi@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