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내리는 커피처럼…가끔씩 인생도 멈춰서야"

김동민 기자
입력일 2014-10-06 11:43 수정일 2014-10-06 17:41 발행일 2014-10-0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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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잔' 치앙시우청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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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센텀 호텔에서 만난 치앙시우청 감독이 영화의 따스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얼굴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김동민 기자 7000-ja@viva100.com)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인생의 끝 자락에 선 듯한 상실감을 위로할 수 있다면…….”

치앙시우청(姜秀瓊) 감독의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잔’은 지친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영화다.

치앙시우청 감독은 “커피를 통해 상실감에 빠진 주인공들이 위로를 받고, 위로해주며, 소통과 치유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씻어내면서 그들의 삶이 변해가는 과정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제작 의도를 설명한다. 그는 이어 “조금씩 커피를 내리는 과정처럼 인생도 멈춰야 할 때 설 줄 알아야 아름답다”고 말한다.

커피 내리는 과정과 커피향을 떠올리며 작품을 연출했다는 치앙시우청 감독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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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잔’의 배경이 된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반도. 세상과 바다의 끝에 중간에 걸쳐있는 카페에서 사람의 마음을 여는 커피 한잔이 내려진다. (사진 제공=도키 엔터네인먼트)

영화는 해안가 마을 끝에 새로 카페를 차린 주인과 이웃 민박 집 가족의 이야기다. 파도가 맞닿는 세상 끝에 위치한 카페는 잔잔하면서도 독특하다. 중앙에서 바깥쪽으로 원을 그리며 조금씩, 정성 들여 내린 커피는 삶이자 서로의 마음을 열고 위안을 주는 소통의 매개체다. 영화가 끝났지만 그곳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과 그 순간의 막연한 낭만을 자꾸만 상상하게 만드는 이유다.

“세상의 끝은 인생의 끝을 의미하기도 해요. 그 끝에서 비슷한 처지의 두 여인이 만나는 순간을 따뜻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커피가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처음엔 쓰지만 단맛을 남기는 커피처럼 우리 인생도 힘든 순간이 있고, 그것을 경험하기 마련이니까요.”

영화의 배경은 깨끗한 바다와 울긋불긋한 가을 풍경이 절경을 이루는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노토(能登)반도다. 바다·카페·민박이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서 관람객이 가장 궁금해 한 것은 영화 속 카페가 아직 있는 지다.

“원래 그곳에 있던 민박 집을 미술팀이 보수했어요. 카페는 영화를 위해 특별히 제작해야 했죠. 다행히 지자체가 허락을 해줘서 작업할 수 있었고 아직 그곳에 남아있어요. 파도가 망가뜨리지 않았을까 조금 걱정 되지만요.”

치앙시우청 감독은 에드워드 양과 허우샤오시엔 같은 거장 감독들 아래서 꾸준히 경력을 쌓은 대만 출신의 여류 감독이다. 이번 작품은 그의 두 번째 장편 영화. 공교롭게도 ‘일본’ 영화다.

“일본 제작사에서 색다른 연출을 해줄 외국인 감독을 찾고 있었어요. 그 기회가 제게 왔죠. 처음엔 문화적 차이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부분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팀이 소통하며 즐겁게 제작했어요.”

치앙시우청 감독이 기회가 되면 대만·한국·일본 합작 작품을 연출하고 싶다고 하자 자연스레 한국판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잔’을 만든다면 카페 여주인역으로 누가 어울리지가 궁금해진다.

“많은 배우가 있지만 한 명을 꼽으라면 전도연씨예요.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영화 ‘밀양’에서의 전도연 연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영화 ‘하녀’도 재미있게 봤죠. 전도연씨는 작품에 따라 완전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사연을 간직한 여주인역에 제격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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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부터 실종된 아버지의 기억을 찾아 고향에 돌아와 카페를 시작하는 요시다(나가사쿠 히로미)와 미혼모로 힘들게 남매를 키우는 에리코(사사키 노조미). (사진 제공=도키엔터네인먼트)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로 아시아에 첫 선을 보인 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잔’은 내년 2월 일본에서 정식 개봉한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국내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영화와 커피는 닮은 부분이 많아요. 우리가 보는 영화처럼 지금 마시는 커피도 종류가 다양하고 여러 나라에서 수입되고 있어요. (한국을 포함 한)세계 관객의 성향이 자극적이고 스케일이 큰 영화를 찾고 있어요. 그런 작품들 사이에 이 영화가 커피 한잔 즐기는 소중한 여유가 됐으면 해요. 커피는 한국 사람들도 좋아하잖아요.”

김동민 기자 7000-ja@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