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불뚝이 아저씨 '공중제비 아저씨' 됐네

김동민 기자
입력일 2014-09-30 14:00 수정일 2014-10-04 01:36 발행일 2014-10-0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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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에서 젊음 찾는 서울 화곡동 신월족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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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위치한 신원 초등학교. 27일 오후 이곳에선 신월 족구단 초청 친선 경기가 한창이다.

“족구 한판 하실래요?”

족구 안한지 참 오래됐다. ‘여유가 생기면 운동해야지.’ 늘 마음먹지만 현실은 뒷전이다. 영화 ‘족구왕’이 던지는 제안은 갑작스러웠지만, 한편으론 달콤하게 들린 이유다. 공이 발에 닿는 감촉, 파이팅하는 팀원 목소리. 코트 위에서 흘리는 땀방울이 그립다.

족구하는 소리를 쫓아 찾은 곳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위치한 신원 초등학교. 27일 오후 이곳에선 신월 족구단 초청 친선 경기가 한창이다. 선선해진 가을 날씨를 비웃기라도 하듯 족구를 하는 사람들의 머리엔 뜨거운 땀방울이 맺혀있다.   

족구단 구성원은 주로 40~60대다. 배 나온 아저씨들이 소리만 지른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 인터뷰 내내 농담하며 음식을 권하는 분들이 막상 코트 위에 올라서자 돌변한다. 족구는 자기 코트로 넘어온 공을 세 번 터치 내에 상대 쪽으로 넘겨야 한다. 받고, 주고, 공격하는 그들의 터치는 안정적이면서 강력하다. 그들 곁에는 날카로운 눈으로 선수들의 플레이를 분석하는 차석환 감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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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 족구단 차석환 감독.

신월 족구단의 차석환(41) 감독은 “중장년층에게 족구만 한 운동이 없다”고 적극 추천한다. 그는 “족구는 체력의 부담이 적고 쉽게 화합할 수 있는 운동이면서 허벅지와 엉덩이 힘을 기르는 종목”이라며 “몸을 움직이고 싶은데 체력에 자신이 없고, 나이가 들면서 하체가 가늘어짐을 느끼는 시니어 세대에게 족구는 ‘젊음’을 회복하는 비법이다”고 설명한다. 

그의 말을 들자 양천구 신원 초등학교에 모인 50여 명의 시니어 회원들의 하체에 자연스레 눈이 간다. 공을 찰 때마다 반바지 아래 꿈틀거리는 근육에서 웬만한 젊은이보다 건강한 에너지가 발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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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족구단 회원이 공을 차고 있다.

신월 족구단 이종율(51) 회장은 “족구를 하면서 배가 들어가고 허벅지가 5cm 정도 굵어졌다”며 자랑해 보인다. 그는 또 “족구를 하면서 건강과 재미를 동시에 잡았다”며 족구를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족구회원들 사이에서 가장 부러운 대상은 족구를 잘하는 사람도, 젊은 사람도 아니다.

아들과 함께 운동하는 문진철(51)씨가 그 주인공. 어른이 된 아들과 공을 주고

받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회원들의 눈엔 부러움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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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족구를 즐기는 문진철 씨.

문씨는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족구하는 곳에 데리고 다니니 자연스레 족구를 접하게 됐다”며 “아빠와 아들이 같이 있는 시간은 족구 그 이상의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또래 회원들 중 한명은 “딸은 다 좋은데 족구를 못해서 아쉽다”고 우스갯 소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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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문영진씨 커플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문진철씨.

아들 영진(27)씨에게도 족구는 단순한 운동 이상의 가치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시작한 족구가 이제는 나의 친구가 됐다”며 “매주 일요일 아버지와 함께 족구하는 시간이 기다려진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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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 족구단 초청 대회 단체 사진. 이들에게 족구는 '친구'였다.

이날 만난 사람에게 족구는 ‘친구’였다. 강약이 있는 인생처럼 족구는 그들의 보폭에 맞춰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다가간다. 같이 술을 먹는 친구도 좋지만 내 건강을 지켜주는 친구는 더 소중하다.

글·사진=김동민 기자 7000-ja@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