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같은 인문학 요소는 친구 사귈 수 있는 좋은 매개체"

노은희 기자
입력일 2014-10-16 13:15 수정일 2014-10-16 18:44 발행일 2014-09-26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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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희태 지휘자… 100세 시대 음악이 갖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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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예술 감독으로 잔잔한 한국 클래식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서희태 지휘자에게 다가오는 100세 시대에 음악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물어봤다.(사진=윤여홍 기자)&nbsp;<br>

아기자기한 소품들. 아늑한 공간. 2층으로 올라가니 예쁘게 꾸며진 테라스가 있다. 

잘 꾸며진 까페, 레스토랑에 온 기분이다. 음악가의 집은 달랐다. 15일 서희태 지휘자 자택 테라스에서 가을 바람과 함께 1시간 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예술 감독으로 잔잔한 한국 클래식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그에게 다가오는 100세 시대에 음악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물어봤다.

- 서희태 인생에서의 음악은 무엇인가

나에게 있어서 음악은 아내이자 인생의 동반자다. 어렸을 때부터 한번도 클래식과 떠나서 살아본 적이 없다. 요즘은 전공대로 살기 쉽지 않다. 다양한 인생을 살 만큼 세상이 다양해졌다. 하지만 나는 딱 하나의 길만 살아왔다. 나에겐 축복이다.

-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이후로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크다

순간적으로는 높아졌다. 당시 악기 판매율이 증가했고 낙원상가에 악기가 없어 사지 못할 정도였다. 학원들은 넘치는 수강생들 때문에 비명을 질렀다. 한국 드라마 역사에 한 페이지를 썼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금방 식어버리더라. 이후에도 음악드라마들은 나왔다. ‘다섯손가락’, 김희애씨가 이슈가 됐던 ‘밀회’ 등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음악이 돋보이진 않았다.

일본 드라마 ‘노다메칸테빌레’가 한국판으로 준비된다고 하는데 다시 붐을 일으킨다면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감사한 일이다. 다양성이 공존했으면 좋겠다.

- 그렇다면 100세 시대. 어떻게 음악을 즐기면 좋을까.

들으면 된다. 듣지 않는 것이 문제다. 외국친구들과 만나서 대화하면 민족, 언어 살아온 환경이 다 다르기 때문에 같은 주제를 찾아서 얘기하기가 쉽지 않다.

유학시절 기차에서 서로 마주보고 10시간 가는데 말 한마디 안할 수 없겠더라. 하지만 함께 나눌 재미난 이야기들이 없었다. 얘기를 이어 가다 독일 친구한테 난 음악을 하고 베토벤을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서양음악에 관한 이야기로 기차에서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사실 우리는 음악을 배우고 나서 항상 테스트를 하기 때문에 클래식은 불편한 음악이라 여긴다. 하지만 클래식은 오랜 전통을 얘기하는 것이다. 내가 정의하는 클래식은 오랜 시간의 무게를 견디고 살아남은 소수의 음악이라 생각한다. 그 음악은 세계인들과 만남에서 공통의 주제로 이야기 할 거리가 되더라.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여행도 자주 가고 외국과의 교류가 이뤄지면서 자연스러운 만남이 이뤄진다. 무엇을 가지고 공통의 주제를 나눌까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조금만 알고 있으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그래서 100세 시대에는 음악, 미술, 역사 등 인문학 적요소가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좋은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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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대중에겐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예술감독으로 더 잘 알려진 서희태 지휘자가 15일 인터뷰가 진행된 자신의 집 내부 계단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윤여홍 기자)
- 많은 사람이 클래식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뭔지 모르겠어’ 그 안에 답이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제목을 알아야 클래식을 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굉장히 많은 클래식 음악을 수시로 접하면서 살고 있다.

전화할 때 들리는 소리도 하이든의 스트링 콰르텟(string quartet)이며, 그 밖에 CF 등 사회전반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평소에 들을 때는 아무 거리낌 없이 듣다가 콘서트홀에 가자고 하면 졸린다고 한다.

그 자체가 너무 전문적으로 접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클래식을 모른다고 생각하고 평가절하 하기 때문인데 자꾸 들으면 된다. 정말 까다롭고 재미없는 음악이라는 마음을 비워 버린다면 얼마든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이 될 수 있다.

- 서희태 본인은 음악을 어떻게 즐기나

고전음악을 비롯 음악은 다 즐겨 듣는다. 우리집에는 훌륭한 오디오시스템이 없다. 가장 좋은 소리는 실황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베를린 필을 40만원 주고 본다고 했을 때 놀라는 분들이 계신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최고의 사운드를 듣는데 그 정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기계적인 스피커를 통해 듣는 음악을 최고의 낙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해가 잘 안 간다. 난 음악을 들으러 다닌다. 오스트리아 빈을 1년에 2-3차례 간다. 빈에 가면 최고의 공연장(뮤직페라인, Musikverein)이 있다.

난 귀의 감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바로 나를 위한 투자다. 좋은 사운드를 들어야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도 좋은 사운드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공연장에서 많이 들으셨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만 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위안이 있다. 나도 관객의 입장에서 음악회를 즐기고 나올 때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가 있다. “그래 오늘 너를 위해서 오늘 좋은 시간을 잘 썼다.” 이런 위안을 받으면서 음악회를 즐긴다. 아름다운 콘서트홀, 좋은 오케스트라가 좋은 음악을 연주하는데 이를 느끼지 못한다면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 중장년을 위해 추천하는 음악이 있다면

위안을 주는 음악은 느린 음악 보다 밝고 가벼운 음악이 좋을 듯 싶다. 난 모차르트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를 추천한다. 귀족들의 행사나 식탁에서 분위기를 돋우거나 부드럽게할 때 쓰였던 음악. 즉 기분전환이라는 뜻으로 ‘희유곡’이라 이해하면 된다.

현대음악 중에는 피아졸라 4계도 추천해 주고 싶다. 현대음악이라고 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 대중성을 바탕으로 한 현대음악들은 좋은 음악들이 많다. 피아졸라가 비발디를 존경하고 그의 음악 4계를 좋아해서 만들었는데 비발디4계는 12곡인 반면 이곡은 단일악장으로 4곡으로 돼있다. 4계의 두 곡을 비교해서 들어봐도 좋을 것 같다.

서희태 지휘자는 옷을 고쳐 입으며 “ 나의 음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끝까지 음악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은희 기자 selly215@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