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심오는 '독' 굵은 메시지는 '약'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4-09-24 10:00 수정일 2014-09-24 10:00 발행일 2014-09-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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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고곤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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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로 연극적인 연극이다. 지나치게 심오하다. 당연하게도 대중적이진 않다. 세종문화회관과 극단 실험극장이 공동주최하는 연극 ‘고곤의 선물’(The Gift of the Gorgon)이 무대에 오른다. ‘에쿠우스’ ‘아마데우스’로 유명한 희곡 작가 피터 셰퍼의 작품으로 2003년 한국 초연 후 다섯 번째 정기공연이다.

괴팍하고 오만한 희곡작가 에드워드 담슨은 고집불통에 독설가다. 에드워드의 성이 욕설 ‘댐 선’(Damn Son)을 연상시키는 이유다. 그의 조력자이자 반려자인 아내 헬렌, 그녀는 작품 속에서 다산과 풍요의 여신 ‘헤르메스’에 투영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 복수를 주창하는 에드워드, 포용과 용서로 감싸 안아야 한다는 헬렌, 사랑하는 두 사람이 추구하는 ‘정의’는 극과 극에 서있다. 결국, 연극 ‘고곤의 선물’은 수시로 선택의 기로에 서는 인간에게 던지는 문제제기다.

고대 신화와 현대사회가 교차하는 연극 ‘고곤의 선물’이 전하는 메시지는 심오하고 어렵다. 연극 관람 전, ‘고곤’에 얽힌 그리스 신화를 미리 알아두면 이해에 도움이 된다.

고곤은 스테노·에우리알레·메두사 세 자매로 이루어진 그리스 신화 속 존재다. 막내 메두사가 아테나 여신의 신전에서 포세이돈과 사랑을 나눈 대가로 추악한 괴물이 됐다. 그 후 고곤의 세 자매는 눈이 마주치는 사람을 돌로 변하게 하면서 복수를 꾀했다.

아테나 여신의 명을 받아 메두사의 목을 친 페르세우스, 그녀의 목에서는 날개 달린 천마 페가수스와 황금 칼을 찬 거인 크리사오르가 태어난다. 그녀의 목에서 흐르는 피에는 사람을 죽이는 독과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적의 약이 동시에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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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저마다의 ‘정의’를 지니고 산다. 그 정의를 지키기 위해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서기도 한다. 어느 순간 누군가는 고곤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고곤은 인간을 닮았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에드워드의 죽음은 메두사의 죽음을 연상시킨다. 메두사가 죽음을 맞으면서 독과 약이 섞인 피를 흘렸듯 남겨진 헨렌과 에드워드의 아들 필립 담슨은 ‘복수’의 방법을 두고 갈등을 겪는다.

지나치게 어렵고 심오한 것은 이 연극의 단점이자 장점이다. 극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읽는다면 나 자신을 돌아보는 자성의 시간을 선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담슨 역에 박상원, 김태훈이 더블캐스팅됐고 그의 아내 헬렌 담슨은 김소희가 연기한다. 에드워드의 아들 필립 담슨 역에는 김신기가 출연한다. 그 외 에드워드의 아버지 담신스키 역에 이봉규, 헬렌 아버지 쟈비스 역에 고인배 등도 힘을 보탠다.

실험극장 제175회 정기공연이자 서울시극단 2014 특별공연인 ‘고곤의 선물’은 9월 18일부터 10월 5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만날 수 있다. R석 5만원, S석 3만5000원, A석 2만원, 월요일은 휴무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