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인 칼럼] 달걀 쌓아올리기

김영인 논설위원 기자
입력일 2014-09-21 18:20 수정일 2014-09-21 18:20 발행일 2014-09-19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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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인 논설위원
‘콜럼버스의 달걀’은 유명하다. 그렇지만 콜럼버스 따위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달걀 이야기가 있다. 콜럼버스는 기껏 달걀을 깨뜨려서 세웠지만, 그 달걀을 세우지 않고 무려 9개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것이다. 
옛날, 진(晉)나라 임금 영공(靈公)이 난데없이 9층짜리 누대(樓臺)를 세우라고 지시했다. 누대에 올라 세상을 굽어보며 즐기고 싶었던 것이다. 9층 건물은 당시로서는 ‘초고층 빌딩’이었다. 막대한 건축비 때문에 반대하는 신하가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에게 충고하는 자는 죽여버리겠다”고 미리 경고까지 해놓았다. 
그랬는데도 순식(荀息)이라는 신하가 면담을 신청했다. 영공은 활 잘 쏘는 궁수(弓手)를 대기시켜 놓고 순식을 만났다. 골치 아픈 말을 꺼내면 곧바로 쏘아 죽이라고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순식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을 꺼냈다. 
“면담을 신청한 이유는 간언을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조그만 재간을 자랑하고 싶어서입니다. 지금부터 바둑알 12개를 쌓고, 그 위에 달걀 9개를 더 쌓아올리는 재미있는 놀이를 하겠습니다.” 
순식은 조심스럽게 바둑알을 쌓아올렸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달걀을 하나씩 올렸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달걀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아서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영공도 긴장해서 신음이 나왔다. “저런! 위험하다!” 
순식이 말했다. 
“이까짓 달걀 쌓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훨씬 더 위험한 게 있습니다. 임금께서 지금 9층 ‘빌딩’을 지으려는 바람에 나라의 창고가 텅 비었습니다. 백성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들판에서 일해야 할 농부들은 공사에 동원되었습니다. 농사를 망칠 지경입니다. 이럴 때 이웃 나라가 쳐들어오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달걀보다도 훨씬 위험하게 될 것입니다.” 
영공도 느끼는 바가 생겼다. 공사를 중지하기로 했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위여누란(危如累卵)’이다. ‘누란지위(累卵之危)’라고도 한다. 달걀을 쌓아올린 것처럼 위험하다는 소리다. 
오늘날에는 의사를 관철시키는 방법이 달라지고 있다. 달걀을 쌓아올리는 게 아니라 던지고 있다. ‘수입쌀 관세화’에 반대하는 농민단체가 그랬고, 경남 창원의 시의원도 그랬다. 
그런데 아쉬웠다. 보도에 따르면 ‘달걀’이 아닌 ‘계란’ 투척이었다. 달걀이라는 아름다운 우리말은 점점 ‘사어(死語)’가 되고 있었다. 
김영인 논설위원 kimyi@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