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파티 온듯… 도심 숲이 설레는 날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4-09-16 20:51 수정일 2014-09-17 17:44 발행일 2014-09-17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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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로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도시 장터 마르쉐@
믿고 먹고 제값 받는 친환경 농산물부터 새로운 맛·트렌드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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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서울 양재 시민의 숲에서 열린 도시장터 마르쉐@의 풍경. 편안한 차림으로 행사장을 찾은 이들이 이날 장터의 주제인 '가을 소풍'을 만끽하고 있다.

마법과도 같다. 그리고 장관이다. 공터에 파도처럼 사람들과 이야기가 밀려들었다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그 끝에는 낮 동안 오간 이야기와 감정들이 공명하며 떠다녀 손에 잡힐 듯도 하다. 마법의 끝은 황량하지만 풍요롭고, 허무하지만 뜻 깊은 공감이 공존한다.

지난 14일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에서 열린 '도시 장터 마르쉐@'(marcheat.net, 이하 마르쉐)의 풍경이다.원래 열리던 마로니에 공원을 다른 행사로 이용할 수 없어 처음으로 양재 시민의 숲에 판을 펼쳤다.

장터에 참여하는 도시 농부들과 요리사, 수공예 디자이너들(이하 출점팀)이 50~60팀, 매회 마르쉐에 다녀가는 시민이 3000명 이상이다. 문을 연 지 두 시간이면 동이 나는 달버거, 소금과 천연 향신료로 만든 수제 햄 등 마르쉐만의 명물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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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쉐@의 시작을 이끈 사람들. 왼쪽부터 송성희 귀농통문 편집장·김수향 수카라 대표·이보은씨.
◇ "우리가 뭘 먹는지는 알아야죠"

마르쉐는 '함께 얼굴을 맞대고, 안심하고 먹고, 이야기하는 즐거운 시장'이다. 참여자는 직접 키운 농산물과 음식을 매개로 도시 농부와 요리사, 장인과 시민 등이다.

2011년 알음알음으로 모인 김수향(40)·송성희(46)·이보은(46·가나다순)이 "적어도 우리가 뭘 먹는지는 알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마르쉐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김수향은 2005년 일본에서 창간한 한류 월간지 '수카라'(숟가락의 일본어 표현)의 편집장이자 홍대 유기농 카페 '수카라'의 대표다. 3·11 대지진 당시 일본에 머물던 그는 먹거리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경험했다.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 출신의 이보은은 문래동 옥상에서 도시 공동체 텃밭 가꾸기 프로젝트를 기획·운영하며 도시형 농부시장에 대한 가능성을 체험 중이었다.

먹거리에 대한 두 사람의 고민에 '십년후연구소' 대표이자 사단법인 전국귀농운동본부 발행 계간지 '귀농통문' 편집장 송성희가 합류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시민소통 프로그램인 '동대문 봄장' 출범을 기획·운영한 경험을 살려 마르쉐 장터 실현에 나섰다.

세 사람을 비롯해 6명의 디자인그룹 '노네임노샵', 디자이너 '레드튤립'(이경화), 음향 및 설치를 담당한 휴엔터테인먼트 등이 시작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오고 있는 '마르쉐 친구들'이다.

마르쉐 친구들은 각자가 원하는 도시형 장터의 모습을 꺼내놓고 공통분모만을 추렸다. 완성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2012년 10월 마르쉐는 출범했다. 모두가 원하는 모습의 시장을 만들어가는 운영방식은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출점팀과 마르쉐 친구들은 시장이 열리지 않는 8월 '여름밤 소면잔치'와 2월 '새해맞이 떡국잔치'를 열어 운영방식과 개선점을 논의한다. 참여한 이들 모두가 원하는 방식과 개선안만이 운영안으로 채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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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진 행진을 이어가는 명물 달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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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쉐@에서 만날 수 있는 유기농 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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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쉐@에서 만날 수 있는 수제 먹거리들은 인스턴트에 찌든 도시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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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쉐@에서 만날 수 있는 꽃보다 예쁜 먹거리.

◇ 창의적 장터의 원동력 '대화와 공감'

첫 장터를 열었던 2012년 10월부터 현재까지 마르쉐가 추구하는 것은 온전히 대화와 공감이다.

이보은씨는 "농부와 소비자, 요리사 등이 서로에게 설명할 기회가 없다. 이들이 만나 대화하며 서로의 노동 가치를 진심으로 기쁘게 거래하는 시장을 만들고 싶었다"고 기획취지를 밝힌다.

농부, 요리사, 시민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계절마다 다른 양파 맛, 유기농 농작물 가격이 비싼 이유, 왜 시금치 파스타에 뿌리까지 넣는지, 요리에 쓰인 재료 등을 묻고 설명한다.

대화와 공감이 생산자와 구매자 사이에 신뢰를 만들고 정기구매로 이어진다. 농부와 요리사가 대화를 하며 창의적인 레시피가 탄생하고 식재료와 맛을 재발견한다.

장마에 떨어져 나간 농익은 토마토를 말려 올리브유에 쟀다가 마르쉐에 내다 판 부부농부는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1인 가정을 위해 소규모 포장을 하고, 장기 보관할 수 있도록 건조해 채친 파, 대추, 고추 등 상품을 기획한다. 텃밭에 탐스럽게 핀 목화꽃을 엮어 만든 크리스마스 리스를 파는 걸 보고 강남 브런치 카페가 제작 의뢰를 한 예도 있다.

대화와 공감은 새로운 상품을 기획하게 하고 수익을 다각화하며 상상력과 독창성을 발휘한 요리가 되기도 한다. 굳이 '학습공동체'라고 내세우지 않아도 마르쉐는 서로에게 배우고 돕는 커뮤니티로 자가발전 중이다.

마르쉐에 모여드는 이들은 꿈꾼다. 믿고 먹는 농산물, 새로운 맛과 트렌드를 만나고 제값 받고 팔 수 있는 도시 장터를. 그들의 꿈은 더불어 진화하고 있다.

글·사진 =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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