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이 낳은 위험한 계급' 보듬을 제도 필요

노은희 기자
입력일 2014-10-13 14:22 수정일 2014-10-13 19:11 발행일 2014-09-16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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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영숙 서울대 교수 '100세 사회를 위한 제언'<BR>복지에 따른 대가 국민들이 인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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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세대갈등·빈곤 등 사회 문제를 연구해 온 박경숙 교수는 100세 시대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이 시대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 즉 가족에서 이탈하고, 경쟁에서 낙오돼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 사회가 떠안고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사진=윤여홍 기자)

“사회적 불평등이 심각합니다. 경쟁사회에서 안전한 삶을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우리 사회에 매우 ‘위험한 계급이’ 등장했습니다.”

지난 10일 서울대 사회학과 박경숙 교수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심각한 사회 문제 이야기로 시작됐다. 박 교수는 “노동, 가족, 금융 등이 분리된 것 같지만 모두 다 연결돼 있어 하나만 문제가 돼도 모든 것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경숙 교수는 인구학, 노년학, 사회통계학 등을 연구하며 양극화, 세대갈등, 빈곤의 순환 고리 등 사회문제를 연구 해 왔다. 박교수에게 저출산, 고령화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지 그로 인한 고용, 사회복지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들어봤다.

- 저출산, 고령화의 원인이 있다면

간단히 말하면 사회적 불평등 심화, 노동의 안정성 취약, 대책 없는 복지 확장, 가족 부양 시스템 붕괴 등이 문제다. 이들 문제가 결합해 저출산 고령화로 나타난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단순히 인구 변동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문제도 아닌 경제, 사회, 안전망, 삶 등 서로가 얽혀서 나타나고 있는 결과물이라고 보면 된다. 사정이 이런데 출산하면 얼마 더 주고 하는 식의 정책들이 과연 얼마나 해결책으로 작동하겠는가.

-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에 대해 지적했는데 이 문제도 같이 얽혀 있다고 보면 되나

사회적 불평등은 시대적으로 불가피한 흐름이다. 불평등 심화라는 위기 역시 고령자, 청년 모두 다 연결되어 있다. 지역사회에 따라 위기정도가 다르다. 안전망이 취약한 지역에 위기가 집중되고 있다. 불평등 때문에 생존하려고 발버둥 치며 이로 인해 경쟁 위주의 노동 시스템이 계속 가동 되는 것이다. 이 상태로는 더 이상 우리 사회가 바르게 작동하기 힘들다.

- 고용연장 지원 등 중장년 일자리에 대한 정책이 많다

종묘에 가보면 남성 노인들이 엄청나게 많다. 셀 수 없을 정도다. 심각한 사회문제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적정 수준의 사회활동을 위한 중장년 고용 정책이 필요하다.

지금 정책들 보다 더 확장되어야 한다. 종묘에 있는 노인들이 아예 안보일 정도가 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조기 정년 시스템이라 직장에서 일찍 나오고 이차적 일자리는 제한되어 있다. 삶의 의미를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는 일이나 사회적 활동이 있어야 한다. 여가 중심으로 노후를 보내는 것은 여유있는 사람들의 선택이겠지만 봉사를 하거나 소득이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이 들면 기능적인 부분들이 많이 변화하기 때문에 꼭 높은 직종, 돈을 많이 버는 직종이 아니더라도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

- 하지만 중장년 취업 못지 않게 청년 취업 문제도 심각하다

참 어려운 일이다. 한쪽으로 치우치다 보면 세대 갈등을 조장한다. 노년층에도 일자리가 많아야 하지만 젊은 세대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의 일자리가 흔들릴 만큼 노년 일자리가 많아진다는 점이 정서에 맞지 않을 것이다. 이미 인구구조상 고령집단이 많아져 세력화하기가 좋아졌다.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노년층으로 갈 수 있는 정치적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는 점을 배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생한다는 의식이 매우 중요하다.

- 노년으로 갈수록 비정규직이 늘어난다는 지적이 있는데

노년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적으로 좋은 일자리가 창출 되어야 한다. 중장년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얘기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자리가 너무 적다. 경험, 경륜, 지혜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져 버리는 것인데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사회시스템이 잘 만들어져 있는 나라들을 보면 장인들이 많다. 노동의 목적 자체가 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라는 점이다. 숙련과 노동의 의미를 키워가고 상호작용하며 그 안에서 확대 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평생직업을 갖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생산성, 성과만을 강조하는 노동 시스템이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 사회복지정책들이 확장되고 있는데

많은 연구들을 하면서 시민의식 자체가 문제라는 점을 확인했다. 시민들은 복지에 대한 권리만 내세우지 책임지고 대가를 지불하려는 의식은 미약하다. 누군가에 의해 재원은 마련되어야 할 것 아닌가. 이런 의식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복지욕구를 채우기 위해 확장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이렇게 가다 보면 국채가 바닥나는 것은 뻔한 일 아니겠는가.

결국에는 의식이다. 의식이 집단적으로 성찰되고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 있어도 현실화 될 때는 다 변질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 입시중심이 아닌 생명, 죽음, 공생에 대한 교육이 기초가 돼야 하는데 처음부터 반대방향으로 배웠기에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의식구조에 대한 수술이 필요하다.

- 가족 부양 시스템도 딜레마다

우리 사회에는 노부모 봉양, 정중하게 모셔야 하는 관례들이 은연중에 깔려 있다. 이런 점들이 족쇄가 되어 세대 간 반복되는데 이제는 노년도 일방적으로 부양받는 시대는 아니다. 2000년대부터 인구학적으로 혼자 사는 싱글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일자리와 집값, 그리고 가족 부양 때문이었다. 어느 세대가 더 위에 있고 아래에 있다는 관념이 희석 될 필요가 있다. 노년층도 다른 계층과 마찬가지로 사회에 같이 참여하는 세대로 재구성 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한다.

- 앞으로 100세 시대 전망은

90년대 후반부터 노년에 대한 이미지가 변하기 시작했다. 노년층도 사회참여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언론, 학계, 복지현장에 퍼져나갔다. 하지만 지나치게 상품화, 의료화하면서 그 중심에는 젊음층만이 있어 불평등은 더욱 심각해졌다. 또 생산적 활동, 성공적 노년을 강조하는 분들이 너무 자기의 젊은 시절, 잘나갔던 시절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스스로 늙고 쇠퇴하는 것에 대해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불안, 외로움, 빈약함에서 탈피돼야 100세 시대를 잘 보낼 수 있지 않을까. 100세 시대의 바람직한 방향은 이 시대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 즉 매우 위험한 계급인 가족에서 이탈하고, 경쟁에서 낙오돼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 사회가 떠안고 가는 것이다.

노은희 기자 selly215@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