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가장 수명 짧은 돈

이정선 기자
입력일 2014-08-14 08:38 수정일 2014-08-29 10:57 발행일 2014-08-13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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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화폐는 수명이 짧다고들 한다. 돈을 험하게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이유도 있다. 빠듯한 살림에 돈을 잘게 쪼개서 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돈의 수명이 길어질 재간이 없다는 우스개다.

 

그런데 돈의 수명은 더욱 짧아지고 있다. 5만원짜리 고액권이 그렇다. 돈은 유통되어야 돈인데, 5만원짜리 돈은 찍어내기 무섭게 사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5년 전부터 발행되기 시작한 5만원짜리 돈은 벌써 43조원 넘게 풀렸다는 소식이다. 국민 1인당 17.88장꼴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국민은 그 5만원짜리 돈을 좀처럼 만져보기 힘든 것이다.

그 많은 5만원짜리 돈이 어디로 갔나 싶었더니, 엉뚱한 곳에 숨겨져 있었다. ‘김 엄마’ 15억원, 어떤 국회의원 1억6000만원 등 죄다 ‘뭉칫돈’이었다. ‘띠지’도 풀지 않은 돈이었다. 언젠가는, 어떤 사람이 ‘한우선물세트’에서 얼음주머니 한 개를 빼내고 그곳에 비닐로 싼 5만원짜리 돈 100장을 넣어 ‘전직 국회의원’에게 ‘택배’로 보낸 적도 있었다. 

당초 한국은행은 5만원짜리 돈의 발행을 강행하면서 ‘국민 편리’를 강조했었다. 1만원짜리 돈이 발행된 1973년 이후 국민 1인당 소득은 100배 넘게 늘었고, 물가도 13배나 치솟았다고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1만원짜리를 쓰고 있어서 불편하다는 논리였다. 5만원짜리 돈을 찍으면 연간 2800억원에 이르는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 발행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도 빠뜨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국민은 5만원짜리 돈 덕분에 ‘편리’해졌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5만원짜리는커녕, ‘푼돈’마저 여전히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면서 살고 있을 뿐이다.

이정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