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살리면서 죽이는 정책?

이정선 기자
입력일 2014-08-12 09:23 수정일 2014-08-29 10:57 발행일 2014-08-12 99면
인쇄아이콘
20140808010000783_1
한 시민이 담배를 들고 있다.(연합)

노무현 정부 때 담뱃값을 올리자마자 나타난 현상이 있었다.

서민들이 ‘싸구려 담배’를 찾은 것이다. 당시 ‘에쎄’ 등 비싼 담배의 판매 비중이 뚝 떨어진 반면, 싼 담배의 판매가 늘어났었다. 주머니사정 때문이었다. 

정부가 담뱃값을 인상하려고 할 때마다 내놓는 명분 가운데 하나는 ‘국민 건강’이다. 담뱃값을 올려야 흡연율을 낮춰서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골초들은 담배를 끊거나 줄이지 못했다. 별 수 없이 값싸고 독한 담배를 선택하고 있었다. 질 낮은 담배가 건강에 유리할 재간은 없었다.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담뱃값이 싸다는 논리도 동원되고 있다. 하지만 서민들에게는 그 싸다는 담뱃값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루 1만 원의 용돈을 쓰는 서민이 2500원짜리 담배 한 갑을 산다고 하면, 용돈의 25%를 지출하는 게 된다. 소위 ‘가진 자’에게는 ‘그까짓 돈’이겠지만, 서민들에게는 제법 껄끄러운 돈일 수도 있다. 몇 해 전, 이영수 항공대 교수의 ‘담배가격 인상 부작용 대처 방안에 관한 연구’에서 흡연자 1034명 가운데 71%가 “지금도 담뱃값이 비싸다”고 응답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런데 담뱃값 인상, ‘물가연동제’ 추진이다.

지금 정부는 국민에게 소비를 권장하고 있다. 휴가를 하루 더 가면 관광비용 지출이 1조4000억 원 늘어난다는 수치까지 제시하고 있다. 소비를 해야 내수가 좋아지고 경기도 따라서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뱃값이 오르면 먹고살기 빠듯한 서민들은 그만큼 다른 지출을 억제하려고 할 것이다. 그럴 경우 소비는 상대적으로 부진해질 수밖에 없다. 한쪽으로는 경기를 살린다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죽이는 정책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담뱃값만 따져 봐도 이렇다. /이정선 기자 jsle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