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연필로 글 쓰면 내 몸이 글을 밀고나가는 느낌' 연필의 감성에 빠져들다...연필 매출 19% 증가
"창의력은 쓰면서 나온다. 아이디어의 시작은 연필이다."
연필심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종이를 부드럽게 훑어 내려가는 소리는 늘 새로운 생각이나 일이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다.
언론에선 박근혜 대통령과 이병박 전 대통령이 연필로 업무 보는 모습이 자주 비춰졌다.
영화 ‘명량’ 덕분에 다시 주목 받는 소설 ‘칼의 노래’의 저자 김훈은 연필로 집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연필로 쓰는 내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연필은 꾸준히 사랑받는 필기구다.
연필은 ‘무언가를 쓴다’는 인류의 원초적 행위에 가장 잘 부합하는 도구다. 인류의 기술이 우주로 터전을 확장하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시대에 연필은 과거를 떠올리는 매개체이자 아스라한 그때 그 감촉을 되살리는 추억의 도구이기도 하다.
부모님은 학교에 보내는 자녀에게 ‘공부 열심히 해라’는 말과 함께 꼭 연필 한 타(12개)를 선물했다. 필통 속엔 늘 어머니가 직접 깎아 준 연필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연필이 주는 추억과 쓰는 촉감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그 인기가 늘고 있다.
실제 국내 연필 생산 액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내 대표 학용품 브랜드 모닝글로리 홍보부의 이참솔씨는 “작년에 비해 올해 연필과 연필 관련 매출이 19%정도 증가했다”며 “연필을 중심으로 관련 용품(연필깎이, 연필 그립, 보호캡 등) 매출이 많이 늘었다”고 밝혔다.
과거엔 값싼 중국산이 많이 팔렸지만 최근엔 품질 문제가 발생하면서 국내 및 해외 유명 브랜드 연필이 주목받고 있다. 연필이 만들어진 역사만큼이나 그 브랜드와 종류도 다양하다.
여러 연필 중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인기 있는 디자인은 노란 몸채 끝에 지우개가 달린 육각형 그립 모델이다.
노란색이 눈의 피로를 줄이고 지우개가 달려 있어 쉽게 쓰고 지울 수 있다. 하나의 브랜드에서 나온 제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 디자인의 연필을 국내에선 동아 연필과 문화 연필에서 제작하고 해외에선 독일의 스테들러가 생산한다.
HB, B, 2B 연필심의 강도에도 종류가 있듯이 그 품질에도 등급이 있다. 높은 등급의 제품일수록 나무의 결이 고르고 연필의 심이 종이에 부드럽게 잘 묻어난다.
저렴한 것은 한 자루에 300~500원 하지만 비싼 것은 한 자루에 2000원이 넘는다. 최근엔 연필을 수집하는 마니아들이 늘어 구하기 힘든 연필일수록 더 비싼 값에 거래되기도 한다. 점점 사라져 가는 오래된 문방구에는 숨겨진 보물을 찾는 연필 수집꾼들의 발걸음이 잦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연필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진 브랜드는 독일의 스테들러와 파버 카스텔이다. 둘 모두 다양한 필기구를 제작하고 있는데 세계 최고 학용품회사 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해외 업체들이 사무용과 미술용품 제품에서 높은 브랜드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면 국내 업체들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캐릭터 연필을 출시하며 주목받고 있다.
국내 학용품 업체인 모닝글로리는 꾸준히 캐릭터 연필을 제작해 오다 최근엔 독도 시리즈 학용품(지우개, 연필, 노트)을 제작해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모닝글로리 관계자는 “먼저 출시된 지우개 상품은 이미 120만개를 돌파했고 뒤늦게 출시된 연필도 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연필의 인기덕분에 새롭게 주목받는 것이 관련 용품들이다. 업체들은 몽당 연필 뒤에 꽂는 모나미 볼펜 대신에 ‘전용 홀더’를 제안한다. 또 한 업체는 연필의 감수성과 실용성에 고급화 전략을 심어 선물용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생각의 시작은 ‘끄적거림’이다. 연필은 우리가 가장 쉽게 끄적거릴 수 있는 필기구다.
키보드의 자판이 아무리 빠르고 스마트폰의 터치가 아무리 편해도 연필만이 주는 ‘새로움을 쓰는’ 감성은 절대 대체하지 못한다.
김동민 기자 7000-ja@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