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인 칼럼] 돈 없는 휴가 세번째 이야기

김영인 논설위원 기자
입력일 2014-07-30 13:59 수정일 2014-09-0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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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인 논설위원
우리나라의 부채는 옛날부터 유명했다. 품질이 최고였고, 종류도 많았다. 승두선, 어두선, 사두선, 합죽선, 반죽선, 외각선, 내각선, 삼대선, 이대선, 죽절선, 단목선, 채각선, 소각선, 광변선, 협변선, 유환선, 무환선…. 

색깔도 청색, 황색, 적색, 백색, 흑색, 자색, 녹색 등 갖가지였다. 크기도 다양했다. 가장 큰 부채의 경우, 대나무로 만든 화살 크기의 부챗살이 40∼50개나 되었다. 이를 백첩(白貼)이라고 했다. 부채에는 금강산 일만 이천 봉 등 운치 있는 그림을 많이 그려 넣었다. 

그 중에서도 접는 부채는 우리나라가 ‘원조’였다. 우리가 접는 부채를 개발, 중국에 보냈더니 당시 명나라 임금 영락제가 감탄하고 말았다. 영락제는 “이 부채와 똑같은 것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벤치마킹’이었다. 이때부터 접는 부채가 ‘천하’에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접는 부채는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발명품’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우리 부채를 ‘벤치마킹’하면서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우리 부채를 ‘고려선(高麗扇)’이라며 매우 귀하게 여겼다. 중국 사신들이 오면 우리 부채를 저마다 선물로 가져가려고 하기도 했다. 우리는 ‘부채 선진국’이었다. 

그런데, ‘부채 선(扇)’은 집(戶 ? 호)과 깃털(羽 ? 우)을 합친 글자다. 따라서 부채라는 물건은 애당초 집 바깥이 아니라 안에서 쓰는 것이었다. 부채질을 해서 더위를 식히고, 바람을 일으켜 공기를 순환시키는 용도였다. 

그랬으니, 휴가비가 껄끄러운 서민은 ‘집에서 쓰는 물건’인 부채로 휴가를 대신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부채는 바람을 일으켜 먼지 같은 오물을 멀리 날려버리고 ‘여름철의 불청객’인 파리, 모기 등 곤충도 쫓거나 혹은 후려쳐서 잡을 수도 있다. 공기를 맑게 해서 병이나 재앙을 몰고 오는 잡귀와 사(邪)를 제거하는 부수적인 효과다. 그래서 부채에는 ‘8가지 덕(八德)’이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부채로 휴가를 대신하는 과정에서 골치가 아파질 가능성도 있다. 부채와 발음이 똑같은 ‘부채(負債)’ 탓이다. 부채질을 하다가 ‘가계 부채’가 갑자기 생각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부채질이 시원하기는커녕, 되레 답답하게 느껴질지 모를 일이다.

김영인 논설위원 kimyi@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