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잉여현금…은행 “기업예금 못받겠다”

정은지 기자
입력일 2014-07-24 17:48 수정일 2014-08-18 16:27 발행일 2014-07-24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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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넘치는 현금을 은행에 맡기려 해도 은행이 이를 받지 않으려는 우스운 광경이 연출되고 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기업예금은 지난달 말 기준 2년전보다 11.1%, 12.6%씩 늘었다. 현재 두 은행의 기업예금액은 53조2000억원과 38조3000억이다.

같은 기간 우리은행은 9% 증가해 86조8000억원, 신한은행은 8.8% 늘어나 79조3000억원의 기업예금을 보유 중이다.

우리은행은 최근 수백억원을 연 2.5% 우대금리로 받아달라는 지방은행의 기업예금 유치 요청을 거절했다.

우리은행 고위 관계자는 “꼭 받아야 하는 거래관계 기업이 아니면 역마진 우려 때문에 거절한다”며 “서로 자금이 넘쳐나다 보니 다른 은행도 상황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역마진은 대출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보다 예·적금 이자로 나가는 돈이 많은 현상을 말한다.

은행 내부에서 기업예금 유치 때문에 영업 부서와 자금 부서가 갈등을 겪는 경우도 있다. 영업 부서가 기업예금을 유치하면, 돈을 굴려야 하는 자금 부서가 퇴짜를 놓는 것이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어렵사리 협상을 거쳐 유치했는데 자금 부서와의 충돌 때문에 금액을 줄이거나 계약이 무산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은행들이 받는 기업예금은 기업 입장에선 여유자금이다.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에 따르면 국내 100대 대기업의 잉여현금흐름은 120조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약 10%에 해당한다.

돈이 기업의 여러 예금계좌에 묶여있다 보니 아무리 기준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어도 실제 시중에 도는 돈은 줄어든다.

중앙은행이 푼 돈이 시중에 얼마나 잘 도는지 보여주는 통화승수는 지난 5월 19.4배로 2001년 12월 이후 가장 낮았다. 통화승수가 낮을수록 경제 활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강병구 인하대학교 교수(경제학)는 “임금 근로자에 더 배분해야 할 몫이 배분되지 않아 가계 소득은 늘지 않고 기업예금만 늘었다”고 지적했다.

정은지기자 bridge_lisa@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