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거진 '신영복체' 논쟁…"이미 대중화" vs "공공기관 사용 부적절"

정유리 인턴기자
입력일 2023-03-22 14:18 수정일 2023-03-22 14:18 발행일 2023-03-22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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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훈석 연합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재임 시절 ‘신영복체’로 쓰인 국정원 원훈석 (사진=연합)

서울경찰청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을 국정원 원훈석 교체 과정에서 압력을 넣은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내사 중인 가운데 ‘신영복체’를 둘러싼 논쟁이 또다시 불거졌다. 글씨체 사용에 정치색을 투영하는 것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있는 반면 신영복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도 존재한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정원은 박 전 원장이 재임중이던 2021년 6월 원훈을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으로 바꾸고 원훈석을 교체했다. 바뀐 원훈석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0년간 복역한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손글씨를 본뜬 ‘신영복체’가 쓰였는데, 공안기관이 간첩 혐의로 형을 살았던 인물의 글씨체를 사용했다는 점이 논란이 됐다.

신영복 교수는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던 1968년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인물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이 사건에 대해 “일부 시민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통혁당을 결성해 정당으로 위장한 뒤 반정부·반국가적 활동을 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1988년에 사상 전향서를 쓰고 수감생활 20년 만에 특별 석방됐다. 그러나 출소 후 “전향서는 썼지만 사상을 바꾸진 않았다. 통혁당에 가담한 것은 양심의 명령”이라고 말해 이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지난 17일에는 한일정상회담 내용을 비판하는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의 배경 현수막에 신영복체가 사용돼 논란이 됐다. 현수막에는 커다란 태극기 아래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지 말라’는 문구가 적혔다. 이에 민주당은 글씨체에 과도한 해석을 하지 말라며 ‘신영복체’는 유명 소주 상품 브랜드를 포함해 이미 상업적으로 널리 쓰인다고 맞받아쳤다.

교육계에서도 ‘신영복체’를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작년 11월 강원도교육청은 속초지역의 한 교육기관 입구에 세워진 기념석의 철거를 추진했다. 기념석에는 ‘씨앗 드림터’라는 문구가 신영복체로 새겨져 있다. 도 교육청은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장기간 복역한 신 교수의 글씨가 분단 현실을 마주하는 진로교육원의 기념석 서체로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다수 있었다”고 교체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신영복체’ 사용에 대한 찬반이 엇갈렸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부 누리꾼은 “‘신영복체’로 쓰인 라벨의 소주도 팔리는 상황이다. 서체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글씨 자체는 예쁘다. 상관없지 않나”는 등의 의견을 남겼다.

반면, ‘신영복체’ 사용을 반대하는 누리꾼들은 “간첩 혐의를 받은 사람의 글씨체를 공공기관이 사용하면 간첩 활동이 미화될 수 있다”, “다른 글꼴도 많은데 굳이 ‘신영복체’를 써야 하나”고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정유리 인턴기자 krystal2000@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