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내과 박원장’ 이서진 “왕, 실장보다 평범한 중년 연기가 더 익숙하죠”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22-02-09 18:00 수정일 2022-02-09 18:00 발행일 2022-02-1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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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내과 박원장' 이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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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서진 (사진제공=티빙)

“아프냐, 나도 아프다”며 다모를 향한 절절한 애정을 표현한 종사관(드라마 ‘다모’), 어려운 환경을 딛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신화의 주인공(드라마 ‘불새’), 타고난 통찰력과 명석함을 지닌 왕(드라마 ‘이산’)…. 배우 이서진(51)의 필모그래피는 유독 ‘왕’과 ‘실장’ 역할이 또렷하게 각인돼 있다. 

1999년 데뷔 후 23년간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지만 뉴욕대 경영학과 출신이라는 빼어난 스펙과 특유의 세련된 이미지 때문에 실장과 왕이 아닌 다른 역할로 그를 기억하기 힘들다. 나영석PD의 예능 프로그램 속 ‘미대형’이나 ‘짐꾼’ 역할도 그의 댄디한 이미지를 전복시켜 웃음을 안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내과 박원장’의 민머리 내과 병원장 분장과 연기는 배우 이서진에게 새로운 도전이라 할 수 있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빵 터지는 민머리 분장과 근엄한 표정, 박 원장이 민머리를 가리기 위해 어설프게 쓴 가발이나 아내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양갈래 머리에 원피스까지 입은 ‘여장’은 지금까지 이서진의 모습을 지우기 충분했다. 이서진 역시 ‘탈모인’ 변신에 만족을 표했다. 최근 화상으로 만난 이서진은 “내가 제작진에게 제안하긴 했지만 내기 봐도 민머리 분장이 너무 잘 어울린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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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내과 박원장’의 한장면 (사진제공=티빙)

“제가 제작진에게 ‘민머리’를 제안했지만 특수분장을 한 채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막상 화면을 보니 웃겨야 하는데 이렇게 잘 어울리면 어쩌나 싶었죠. ‘채널십오야’ 촬영차 놀러온 나영석PD는 제 민머리 분장과 가발 쓴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했죠.”

그가 주연을 맡은 ‘내과 박원장’은 40대 초짜 개원의의 ‘짠한’ 생활을 현실감있게 그린 작품이다. 실제 의사 출신인 장봉수 작가의 동명웹툰이 원작이다. 극 중 박 원장은 고정지출을 줄이기 위해 커피믹스를 숨기고 정수기 입구를 틀어막는가 하면 24시간 야간진료와 비보험 진료를 늘리며 개원 때 진 빚을 갚기 위해 노력한다. 이서진은 “의사들이 개업 때 이런 힘듦과 아픔을 겪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며 “방송 전 의사 지인들이 애환을 잘 표현해달라는 얘기를 가장 많이 했다”고 전했다. 

“‘내과 박원장’은 박 원장의 의술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니에요. 의사란 역할보다 한 사회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40대 중년의 모습에 중점을 뒀죠. 저 역시 왕이나 실장 연기보다 40대 중년이 훨씬 더 익숙합니다. 박 원장은 제가 가진 모습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같은 중년으로서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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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서진 (사진제공=티빙)

‘금수저’ 이미지가 강한 이서진이지만 ‘내과 박원장’의 화력은 대중에게 한층 친근하게 다가가는 계기가 됐다. 이서진은 “‘이서진 전 재산 탕진해서 대머리로 저 작품 찍나보다’ ‘이서진이 이렇게까지 하는데 이 드라마는 봐줘야 한다’는 반응이 인상깊었다”며 “방송 뒤 재미있게 봤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어느덧 지천명을 넘어선 만큼 이서진 역시 중년으로서 고민을 갖고 있다 보니 극 중 박 원장에게 이입하는 면이 많다. 그는 “여유가 있고 없고를 떠나 중년남성으로서 많은 부분을 공감한다”고 말했다. 

“제가 절약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집에서 전기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 편이죠. 음식이나 음료수 버리는 것도 예민하고요. 그런 면에서는 박 원장보다 짠내날 수 있어요.(웃음) 나이에 비해 머리숱이 많은 편이지만 언제 어떻게 탈모가 올지 모르니 그런 부분도 대비해야죠. 정말 시술을 받아야 할 때가 온다면 받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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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내과 박원장’의 한장면 (사진제공=티빙)

‘내과 박원장’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지만 자신의 연기를 평가해달라는 요청에는 쑥스러운 듯 시크하게 손사래를 쳤다. 

“제가 제 연기에 어떻게 점수를 주겠어요. 이미 젊은 시절 감사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배우로서 큰 목표는 없어요. 다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좋아요. 작품을 고를 때도 잘될 것 같아서 출연하기보다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작품을 고르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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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서진 (사진제공=티빙)

최근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인기로 과거 출연작 ‘이산’이 언급되고 있지만 그는 “나는 ‘내과 박원장’으로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PM 택연과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함께 해서 준호도 잘 알아요. 좋은 배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훌륭히 성장해줘 기쁩니다. 이제 이산은 준호죠. 저는 ‘박원장’입니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